며칠 전부터 아침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7시, 해가 더워지기 전에 아파트 정원을 30분 정도 산책하는 건데 예상보다 더 즐겁네요. 게다가 혼자서 하는 산책이 아닙니다.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정원을 걷다 보면 행복지수가 확 높아집니다. 이렇게 훌륭한 제안을 해 준 남편에게 고마울 뿐이지요.
남편이 출장을 떠난 날에는 아들과 둘이 걸어요.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귀염둥이 아들입니다. 제 할 말 다하는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꼬맹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아빠 닮아서 표현력이 끝내주는 아들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듯 부족한 부분이 있지요.
결혼하면 당연히 생길 줄 알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마음고생 좀 하다가 10년 만에 겨우 하나 낳아서 키우고 있습니다. 계획으로는 '성별 가리지 말고 셋은 낳아 키우자.' 였는데 말이죠. 가끔 삶은 내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더라고요.
아침 7시부터 아이를 깨워서 산책을 가는 건 무리되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들은 아침형 인간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말이죠. 보통 아침 6시면 일어나서 부지런을 떱니다. 물론 저녁에 일찍 자는 편입니다. 그러니 아침 7시면 한창 깨어있을 시간이죠.
쉽게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감사에 무디어지기 쉬운 것 같아요. 물이나 공기, 땅에 대해서 매일 감사하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렵게 얻은 생명이다 보니 저절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세 번의 인공수정과 네 번의 시험관 시술을 거치는 동안의 간절함이 맺은 결실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를 기다리면서 인내와 믿음을 배웠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면 가득 채워지는 감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온몸으로 배운 셈이죠. 주변에 친구 아이들은 이제 곧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데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어립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더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있어서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이처럼 큰 축복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침 산책은 운동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땅과 나무와 맑은 공기를 통해 에너지를 채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맑은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아이랑 나란히 걷다가 아이 손을 잡으면 손의 감촉이 참 사랑스러워요. 그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한마디 합니다.
"효가 있어서 엄마는 정말 행복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자주 듣는 말인데도 아이는 수줍어합니다. 배시시 웃으면서 내 손에다 가만히 제 볼을 문지릅니다. 어떨 땐
"엄마, 내가 안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어. 많이 슬플 뻔했지?"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지친 나머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아이가 없으면 어때? 요즘 일부러 안 낳는 사람들도 많던데. 우리 둘이 홀가분하게 여유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자."라고 말하며 남편은 위로해 주었지요. 그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결국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어요. 무언가 간절하게 원하다 보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은 마음을 진흙탕으로 만들기 때문이죠.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이 참 힘들었습니다. 간절히 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은 득도의 경지라고 할 수 있지요.
포기하지 않길 잘했습니다. 아이로 인해 내 존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요. 아이의 존재는 내 삶을 가득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으니까요. 아직은 작고 귀엽기만 한 아이를 보면서 멋지게 성장해 있을 미래를 그려보기도 합니다. 아이가 성장한 만큼 무르익어 있을 우리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잠든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더 잔잔한 기쁨이 온몸에 스며듭니다.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