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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가좋다 Aug 21. 2019

엄마 밥 해줄까?

엄마가 한 것 같은.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엄마 밥 해줄까?"


내가 자취하던 대학생 시절. 가장 많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다.


그래서 엄마 밥이 뭔데?


어릴 적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엄마 미리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끼니때가 되면 나는 직접 쌀을 씻어 압력솥에 밥을 지었다.



나는 밥을 지을 때 15분의 법칙을 따른다. 총 밥 짓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냄비밥의 절대 시간. 요즘이야 성능 좋은 전기압력밥솥이 알아서 해준다지만 예전에는 '감'이 중요했다. 대개 이런 정보는 정리된 것이 없었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처럼 내려올 뿐이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센 불로 끓이다가 약불로 줄여. 그리고 불 끄고 뜸을 좀 들여야 돼. 쉽지?" 



얼핏 들으면 밥을 끓이고 뜸을 들이면 완성된다는 이야기 같지만 얼마나 센 불로 얼마의 시간 동안 끓여야 할지. 또 언제부터 약불로 바꿔야 할지는 그저 내 재량에 달려있었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실패한 기억보다 밥이 맛있게 지어져 즐거웠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나의 15분 밥 짓기 법칙이 완성되었다. 지금은 냄비로 밥을 지으면 냄비에 밥 한 톨 달라붙지 않게 한다거나 누룽지 여부까지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릴 때부터 체득한 15분 법칙은 대학교 자취생활부터 빛을 발했다. 자취생이 비싼 전기압력밥솥을 쓸 수 없으니 저렴한 2~3인용 전기밥솥을 사용한다. 이 밥솥은 크기가 작고 압력이 약하기 때문에 쌀을 뭉그러트리고 밥의 찰기를 앗아간다. 먹어도 막어도 배가 고파지는 속 빈 강정 같은 밥. 그래서 나는 밥솥을 이용하지 않았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밥이 완성되면 밥풀이 달라붙지 않게 주걱에 물을 앞 뒤로 묻힌다. 밥솥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뚜껑을 연다.


'제발 잘 돼라. 제발. 제발.'  

밥뚜껑을 열 때 속으로 외친다.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밥을 짓지만 이 순간은 매번 긴장된다. 밥뚜껑이 열리고 뜨거운 열기와 함께 갓 지은 밥의 달큰한 향이 올라온다.



 '음~ 스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아얀 연기를 손으로 휘휘 저어 날려 보내고 입으로 후후 불며 주걱으로 스억스억 밥을 섞는다. 이때 중요한 의식처럼 나는 주걱으로 밥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아 달다. 갓 지은 밥은 뭐랄까. 내가 햄버거와 피자에 한눈을 팔고, 파스타에 취해있어도 항상 제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마음의 고향 같다.

내가 자극적인 음식들에 지쳐 있을 때 스르륵 다가와 따스하게 내 위를 감싸고 달래주는.






자취생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엄마 밥.

진짜 엄마 밥처럼 다양한 밑반찬에 기가 막힌 솜씨로 요리를 하지 못하지만 나는 배고픈 자취생들의 염원을 담아 연신 엄마 밥을 외쳐댔다.



"엄마의 손 맛을 담은 엄마 밥이 먹고 싶지 않니?"


밥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하아얀 쌀밥에 통조림 햄을 구워내고 김만 올려도 먹성 좋던 20대들은 게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워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가끔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이 차려주신 10첩 반상에 놀란 토기 눈으로 손가락을 쪽쪽 빨며 허겁지겁 먹을 때의 행복함을 기억한다. 부모님도 알고 있으리라. 밥은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 오손도손 둘러앉아 먹는 식탁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배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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