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 막 도착했을 때 우리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저녁 10시가 훌쩍 지나버린 상태에다 저녁을 위해 요리 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다.
솔이는 에어비앤비 호스트 지미에게 세탁기 작동법이며, 화장실, 부엌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둘의 말을 들으며 끼어들 타이밍을 재다가 지미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 지금 밤 10시가 넘었는데 우리가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이 있을까? 사실 아무거나 상관없어 우린 지금 너무 배고프거든.
어울리지 않게 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지미가 말을 이었다.
- 그럼 24시간 운영하는 타코 집이 있는데 가르쳐 줄게. 사실 여기는 내가 자주 가는 맛 집이야
구글 지도에 의지한 채 초행길을 더듬으며 걸었다. 적막하게 가로등만 껌뻑이는 거리는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길을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했다. 멕시코 시티는 심야에 종종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지도상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고 했는데 24시간 운영한다는 타코 집은 당최 보이질 않고 지나가는 멕시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잠깐 꺼내 확인한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경계하랴, 길 찾으랴 정신은 없고 배는 고프고 가방에 남아있는 초코바로 대충 때우고 잘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사거리 코너에 환하게 주위를 밝히는 불빛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저깄다!!"라고 소리쳤다. 가게에 도착하니 휴 하는 한숨과 함께 허기보다 피곤이 몰려왔다. 경계심에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려서인지 배고픔은 자그맣게 쪼그라들어 버렸다. 솔이가 먼저 메뉴판을 훑으며 어떤 걸 먹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같은 걸로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말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가게는 완전 오픈형이어서 요리사들이 고기를 굽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가게 한 켠에는 겹겹이 쌓인 고기가 회전하며 구워지고 있었는데 크기가 1미터가 훌쩍 넘어 보였다. 제일 꼭대기에는 파인애플이 꽂혀 고기와 함께 회전하며 익어가고 있었다. 파인애플을 익혀 먹는다니 귤도 구워 먹으면 단 맛이 증폭되는데 구운 파인애플 맛이 궁금했다.
타코를 주문하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토르티야를 왼손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긴 칼을 들어 고기의 겉면을 슥슥 썰면서 떨어지는 고기를 왼손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고기의 제일 위에 꽂혀 있는 파인애플 쉭 하며 칼로 치면 파인애플 한 조각이 토르티야 위에 탁 하고 떨어진다. 3초에 하나씩 만들어내는 현란한 칼솜씨에 현혹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우리가 주문한 타코가 도착했다. 테이블 위에는 3가지 소스가 올라와 있었는데 아보카도를 듬뿍 갈아 넣은 소스, 토마토와 양파, 고수를 잘게 썰어 섞은 살사 소스, 칠리를 갈아 넣은 매운 소스 순이었다. 처음엔 칠리소스와 살사 소스를 조금씩 넣고 위에 라임을 살살 뿌려 먹었다. 혀 끝이 알싸하게 매운 것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고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마지막에 구운 파인애플이 씹히며 입안을 깔끔하게 해 주었다. 이것봐라?
나는 살짝 흥분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타코를 하나 더 집어 들고 아보카도와 칠리소스, 살사 소스까지 넣고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가득찬 입속의 만족감을 느끼며 천천히 씹으면 입 안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고기와 아보카도가 손을 맞잡은 채 춤을 추고 파인애플은 카우보이 모자에 기타를 연주했다. 흥겨운 리듬에 내 손과 입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은 멕시코시티를 떠나기 전 한 번은 아니 두 번은 꼭 다시 와야겠다고.
타코는 나에게 한국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손바닥에 상추를 올리고 고기를 넣고, 밑반찬과 쌈장을 넣듯이 토르티야 안에 올라간 토핑에 소스를 얹어 쌈싸듯 흐르지 않게 양 끝을 모은다. 내용물이 빠지지 않게 잘 오무린 후 입 속으로 골인. 쌈을 싸는 행위에서부터 입안이 터질듯이 가득 채우는 방식까지 타코를 먹을 때면 마치 쌈밥을 먹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분명 같은 길인데 다르게 느껴졌다. 어두웠던 골목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 운치가 있었고, 길거리의 멕시칸들에게 올라하고 외치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골목 사이사이로 우리나라의 포장마차같은 간이음식점들이 숨어 있었다. 이 곳은 더 이상 무서운 소문이 가득한 멕시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