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전문 스포츠 기자라는 꿈이 있었다. 미래를 상상하면 얼굴에 생기가 돋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관련 서적을 사고 매일 정규 경기를 챙겨보며 다음 날 일간지 스포츠면을 스크랩했다. 스포츠 라디오, 스포츠 채널, 스포츠 커뮤니티까지 순회해야 하루 일정이 마무리됐다.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고3은 ‘야구 덕질’에 심취했다. 알면 알수록 심오한 세계에 취해있던 나는 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고 다행히(?) 언론학도가 되었다.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꿈을 꾸던 아이가 있었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이루고픈 목표가 같았기에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어쩜 이런 운명이 있을까? 김해와 진주, 연고도 다른 우리가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찰떡같은 인연인 내 친구 이승진이 [낄낄 프로젝트] 인터뷰 라인업에 빠질 순 없지. 햇살이 좋던 주말의 오후, 비가 억수로 내리던 평일 오후에 승진이를 만났다.
글. 햇배
한국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와 승진이는 각자 다른 일을 한다. 나는 문화부 기자로 시작해사회, 경제, 의료 등 잦은 부서 이동을 했지만 끝내 스포츠부는 못해봤다. 문화·스포츠부 부장님으로부터 롯데자이언츠 출입을 제안받았지만 퇴사를 맘먹은 때라 단칼에 거절했다. 20대 초반, 내가 정신없는 사회생활을 할 동안 승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 우린 대학 입학하고 만났는데 접점이 많아서 신기했어. 평행선을 달려왔던 기분이랄까.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전공을 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이었어. 올림픽 기간에 아침밥을 먹다가 라디오를 틀어놨었거든. 그때 경기 일정을 알려주는데 한국 야구 대표팀이 미국과 경기를 한다는 거야. 워낙 잘하는 국가니까 챙겨봤지. 그날 *케네디 스코어로 재미있게 풀어나갔어. 야구에 재미를 붙이는 시점에 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잖아. 야구에 흥미가 생기면서 들었던 생각이 나도 저런 감격스러운 순간, 재미있는 순간, 그 순간순간에 현장에 있고 싶었어. 스포츠 기자는 가능할 것 같은 생각에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했지.”
*케네디 스코어(Kennedy score)
야구에서 두 팀의 득점이 8대 7인 상황. 미국 35대 대통령인 케네디가 야구는 8대 7로 이기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 우린 경상도에 연고를 두고 있지만, 롯데자이언츠가 아닌 서울 두산베어스 프로야구팀을 응원하게 된 계기도 같았지. 소름!
“정규 리그를 보려면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재밌잖아. 내가 경남 사람이니까 롯데자이언츠 경기를 봤는데 그날따라 팀 성적이 안 좋아서 재미가 없더라고. (웃음) 다른 채널을 돌리다가 아는 선수가 많은 두산 경기를 보게 됐어. 올림픽 때 대표팀 감독과 주축 선수인 1, 2, 3, 4번 타자가 다 두산 소속이었잖아. 경기력도 좋아서 빠져들었지.”
─ 서른두 살이 된 지금, 우리는 스포츠 기자가 아니네.혹시 미련은 없어?
“기자라는 직종이 부서 이동도 잦고, 야구가 아닌 다른 스포츠를 맡게 될 수 있잖아. 나는 내가 응원하는 팀 아니면 관심이 없어. 오직 하나만 판다!”
─ 사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취업하면서 동기들의 근황을 전혀 알지 못했어. 넌 뭘 하고 있었어?
“바로 졸업하기엔 아쉬움이 남아서 돈 모아 유럽 여행을 가려고 4학년에 휴학했어. 돌이켜보면 그땐 소심하고 자신감도 없어서 워킹홀리데이는 자신이 없었지. 영어를 못하니까 가서 살 자신이 없는 거야. 여행이라도 가야지 싶어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3주 남짓 있었어.”
승진이 첫 유럽여행 때 이용했던 카타르 항공. 승무원이라는 꿈을 갖게 한 항공사다.
─ 좋은 경험이다. 요즘 남는 건 여행이라는 생각을 자주해.
“여행 다녀와서 승무원을 꿈꾸게 됐어. 아주 어릴 때 대한항공 유니폼이 정말 예뻐서 입고 싶었거든. 작은 키 때문에 포기했는데 유럽 여행에서 만난 외항사 승무원들의 키가 나랑 비슷한 걸 보고 다시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하면서 영어 학원에 다녔지.”
─ 모든 취준생이 그렇겠지만, 외항사 승무원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
“세르비아에서 열린 *오픈데이에 간 적이 있었어. 그날따라 화장도 잘 되고 자신감이 붙었지. 나 아니면 누가 되겠냐는 생각이 드는 거야. 결론적으로는 1차 탈락을 하긴 했어. 면접관과 대면하면서 테스트하는 건 처음이라 너무 떨렸거든. 내가 너무 긴장한 것 같으니 먼저 *암 리치(arm reach)를 재보래. 당시 소문에는 그게 긍정적인 신호라는 소문이 있었어. 근데 면접 옷이 불편했고 바닥도 푹신해서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 거지.”
*오픈데이 :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된 국가의 면접 날짜에 직접 면접을 보러 가는 것.
*암 리치(arm reach) : 손끝이 미치는 범위
─ 아쉽다! 키가 조금만 컸더라면..
“내가 만약 영어를 못해서 떨어졌다면 노력으로 실력을 키우면 되는데 키는 내가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항공사에서 척추 각도까지 볼 정도로 엄격했대.”
─ 준비 기간이 꽤 됐을 텐데 승무원 준비를 끝내는 건 아쉽지 않았어?
“사실 면접도 여러 번 보지 않았어. 영어에 대한 확신이 없어 자신감도 없었거든. 면접을 통과한다고 해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인 거야. 직업 특성상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실수를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잖아. 그러다 보니 부담이 컸던 것 같아. 그러면서 면접을미루게 됐지.”
─ 어느 날 네가 해외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었어
“외항사 준비생끼리 스터디를 한 적이 있어. 외국 경험이 많은 친구는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대답하는 거야. 난 해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이야깃거리가 부족했어. 면접을 하면 매력적인 지원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경험을 쌓으려 워킹홀리데이를 택했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순간들
경험이 자산이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경험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알려준다. 선택에 확신을 심어주고 취향을 뚜렷하게 만든다. 승진은 취업 대신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외국인 신분으로 낯선 세상에 발 디딘 그는 눈물 콧물 쏙 빼며 독립적으로 사는 힘을 키웠다.
─ 보통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 호주에 많이 가는데 너는 아일랜드를 택했네?
“사실 캐나다에 가고 싶었어. 4,000명 선발 공고에 두 번 지원해서 모두 떨어졌지. 아일랜드는 200명 뽑는데 한 번에 된 거야. 운이 좋았지. 그런데 붙은 당시 내가 스물일곱 살이었거든?1년을 꽉 채우고 돌아오면 스물여덟 살이잖아. 과연 한국에서 취업이 될까라는 생각을 했어. 지금 생각하면 되게 한심한 고민이지. (웃음) 그러다 든 생각이 지금 안 나가면 서른 살에 후회할뿐더러 그때가 되면 더더욱 못 나갈 것 같았어. 1년 사이에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질렀지 뭐.”
─ 진짜 멋진 생각이다. 아일랜드는 어땠어?
“아일랜드에서의 첫 한 달은 집 구하는 데 썼어. 이후에 직장을 구했고. 모든 과정이 맨땅에 헤딩이야. 나는 그렇게까지 어려울지 몰랐거든. 한국은 구직 사이트가 잘 마련돼 있는데 아일랜드는 가게 앞에 스태프를 구한다는 종이를 붙여놔. 걸어 다니면서 하나하나 살펴봐야 해. 보이는 곳마다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은 안 오지, 도착하자마자 비자는 결제했고 돈은 떨어져 가지, 결국 집에 와서 울기까지 했다니까? 다행히 같이 살던 언니의 지인이 새로 오픈한 일식당 매니저로 근무하는데 이곳에 지원해보라고 해서 일자리를 구했어. 아일랜드에 온 지 2개월 만에!”
─ 피 말리는 시간이었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간 정말 빠르게 흘러가잖아. 1년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왔어?
“시간이 금방 가서 아쉬운 거야. 이제 좀 영어가 들리고 말이 트이는 상황이었거든. 고민하다가 한국에 잠시 들어와 학생비자로 전환해서 아일랜드로 다시 나갔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 다니고, 직장 구해서 정착하려는 마음이었어.”
아일랜드에서의 추억들
─ 다시 온 아일랜드는 어땠어?
“첫해는 날씨가 좋아서 몰랐는데 다시 가니 종잡을 수 없어. 항상 흐리고 비가 와. 사람이 날씨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받는지 몰랐어. 날씨가 좋으면 에너지를 받는데 반대인 상황에서는 움츠러들어.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들도 있어서 우울감이 들 정도로 힘든 거야. 비싼 월세에 6~7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 생활도 힘들었고. 내가 여기서 평생 살 수 있을까? 확신이 생기질 않았어.”
─ 날씨의 영향이 컸구나. 하지만 반대로 좋았던 점도 있었을 것 같아.
“주변 유럽 국가 여행이 쉬웠어. 비행기 좌석 값도 저렴해서 블랙프라이데이 때 영국 왕복 항공권을 10유로에 구매한 적도 있었거든. 다양한 유럽 국가를 여행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확 틔우게 됐지.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일하는 것도 정말 재밌었어.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서 뛰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한국은'빨리빨리' 문화잖아. 정형화된 인생의 스텝도 있지.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야 되고 취업하면 결혼하는 것 말이야. 아일랜드에서는뚜렷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열심히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모습을 많이 봤어.”
─ 느긋한 삶.. 정말 부럽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국가를 여행했어?
“세어 보진 않았는데.. 스페인, 노르웨이,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등등 10개국은 족히 넘을 것 같아. 난 전 대륙을 밟아보는 게 소원이야. 이집트 피라미드도 보고 싶고.”
승진이가 좋아하는 유럽 BEST 3. 스페인 네르하, 포르투갈 포르투, 프랑스 안시 등등
─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구나.
“나는 아일랜드에 살아도 그냥 한국인일 것 같은 거야. 그곳에 스며들어서 잘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내 몸은 아일랜드에 있지만 한국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 한국 프로그램을 보고, 한국 소식을 접고, 한국 이야기를 하고, 한국 음식도 먹지. 그래서 일단은 돌아가자고 생각했어. 한국회사 생활 특유의 문화가 싫어서 다시 나가고픈 마음도 있었는데 그해에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못 나가게 됐지.”
─ 만약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안갈래. 하지만 나이가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나가라고 말할 거야. 정말 힘들긴 하거든? 그런데젊을 때 할 수 있는 게 있어.얻어올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내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질 수 있는 마음
─ 승무원을 준비하다 지금은 웹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네. 혹시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직업이야?
“오래전에 화장품을 사려고 이니스프리 홈페이지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 보통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면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잖아? 근데 홈페이지를 리뉴얼해서 페이지가 옆으로 넘어가는 게 너무 신기한 거야. 그때 직접 만들어보면 되게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 한국에 오면서 취업을 해야 하니 웹 디자이너를 준비하게 된 거지.”
웹디 승진의 책상. 나도 모니터 세 대 쓰고 싶다...
─ 코딩과 디자인도 하는 이 직업, 어떤 매력이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고, 움직이는 게 재미있어. 물론 고객사를 상대해야 하는 일은 힘들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만족도는 높은 편이야.”
─ 난 요즘 고민이 지금보다 연봉이 적더라도, 야근이 잦더라도 배움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 하지만 돈도 중요하고 일상생활도 중요한 부분이잖아. 넌 어때?
“나는 내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워라밸을 챙기는 편이야. 물론 이 업계는 실력이 우선이라 개인적인 성장도 중요해. 디자인 트렌드가 있고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되다 보니 코딩 강의도 들으면서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 문과생에게 코딩이라니!
“학원 교육 과정에 코딩이 있었어. 요새는 디자인만 해서는 안 되고 코딩까지 할 줄 알아야 돼. 사회는 멀티 플레이어를 원하고 요구하잖아. 걱정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코딩이 너무 잘 맞는 거 있지. 딱딱 떨어지는 계산이 너무 재밌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 쾌감도 있고 말이야.”
─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으면 어떻게 풀어?
“나는 그 순간에만 살짝 욕하고, 집에 가면 별다른 생각이 없어.스트레스는 회사에 두고 와야 해.”
─ 그러기 쉽지 않잖아. 원래도 그랬지만 알고 봐도 넌 정말 털털한 사람 같아
“친한 사람에 한정해서 장난기가 많아. 그리고 내가 요즘 다시 농구에 푹 빠졌거든. 관심 있는 것에 한해선 열정적인 것 같아. 건강한 몸만 있음 시간을 만들어서도 농구장에 갈 수 있어. 뭐 하나에 빠지면 그것밖에 안 보여.”
─ 요즘 너 하면 농구가 먼저 떠오를 정도야. 언제 빠져든 거야?
“2009년에 신문을 보는데 스포츠 섹션에 한 선수의 인터뷰가 실렸었어. ‘제2의 허재’라면서 농구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긴 거야. (웃음) 경기를 본 후 농구의 매력에 빠졌지. 그땐 어려서 혼자서 직관할 용기가 없었고 가끔 소식만 확인할 정도였어. 그러다 최근에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가 있었는데 마침 응원하던 팀이 정규시즌 1위를 하고 있었어. 원정 경기를 보면서 열정적으로 직관하기 시작했지. 정말 재밌었거든! 다음 시즌을 꼭 챙겨봐야겠다고 맘먹었지.”
─ 농구의 매력은 뭐야?
“야구와는 달리 경기 흐름이 빨라. 점수도 빨리 나서 더 재밌는 거지.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진짜 멋있어. 중계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하는 동작도 볼 수 있고. 내가 장담하는데 너도 좋아할 거야. 나는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전 경기에 가보고 싶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은 삶에 활력이 되는 것 같아.”
─ 그럼 일에서 벗어난 시간엔 농구를 보는 거야?
“지금은 농구 시즌이 아니야. 그래도 유튜브에 콘텐츠가 올라오거든. 난 농구 구단 채널을 모두 구독해서 영상을 챙겨보고 있어.”
─ 만약에 농구 전문 기자를 시켜준다면 할 거야?
“아니. 그 정도의 전문성은 없는 것 같아. 그냥 팬으로서 즐기는 것뿐. 일과 취미는 분리하는 게 나아.”
농구에 진심인 친구의 모습. 열쩡! 열쩡!
─ 넌 굉장히 현실적인 친구야
“분명히 그곳에서도 스트레스받는 부분이 있을 거란 말이야. 굳이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아서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 네가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궁금하다
“사회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 어른들이 정해 놓은 스텝을 밟지 않고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 대개 대학 입학-취직-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보편적이고 보통의 삶이라고 하잖아. 하지만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겪어보면 어떨지 궁금해.”
대학생 시절 승진이는 나에게 멋진 잡지사에 다니는 에디터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열심히 일하는 커리어우먼 같다나? 10년이 흐른 지금, 직장인이 된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최근 승진이는 2022-2023 프로농구 리그 경기일정이 공개돼 직관 스케줄을 짜느라 한껏 설렌 모습이다. 농구의 매력을 설파하던 그는 내게 직관을 제안하며 "장담하는데 분명 너도 좋아할 거야!"라고 확신한다. 너의 말을 들으니 느낌이 오는 걸? 나 농구 좋아하게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