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종착역이 죽음으로 끝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발이 되게 하소서.
예전에 여천오거리의 가스충전소 뒤편 높은 언덕에 여천국민학교가 있었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유명해진 신화마을과 길 건너편으로 마주보던 그 학교로 큰 누나를 비롯한 우리 형제들이 졸업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천황의 백성들이라는 뜻으로 일제잔재 청산의 명분으로 초등학교로 개명됐고, 여천초등학교가 현재자리로 옮겨진지도 꽤 오래됐다. 필자는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고 있는바 개인적으로 애로사항인 것은 초중고 동창생들의 모임이나 행사가 항상 주일(主日)인 일요일과 겹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행이나 동창들의 연중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대로 스마트폰으로 동창생들의 모임에 가입돼 있는데 거의가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별세했다는 부고소식이 대부분이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생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아니 50도 안된 나이에 벌써...’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마치 나의 일인 듯 황망(慌忙)했다. 그럴 때면 오른손만큼 가까운 왼손처럼 삶과 죽음은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천초등학교와 부곡에 있던 대현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의 삶이 이렇게 짧다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장례식장에 많이 다녀왔다. 연로한 분의 장례식이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진득한 아픔을 동반하는 별리(別離)의 과정이며, 중년의 질병으로 인한 병사(病死)나 갑작스런 사고사도 경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을 날을 미리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그래서 죽음은 늘 갑작스럽게 맞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에 관한 내용은 금기어처럼 말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적용되는 일상이다.
탤런트 박원숙은 추석특집 ‘같이 살아요’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삶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 일로 인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날마다 일기처럼 유서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특별하고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 일상의 스케치 같은 묘사와 기억해달라는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애잔함이 스며든 문장이었다. 같이 출연했던 여배우도 상실의 아픔을 반추했다. 그녀는 언니의 딸과 같이 지내다가 어느 순간 힘들게 느껴져 어렵지만 입을 떼며 말했다. “얘, 너는 영어도 잘하니 무역회사에 취업하는 게 어떻겠니?” 그리고 그 말대로 이루어져 언니의 딸은 말레이시아의 한 회사에 취직하게 돼 서로 기뻐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교통사고로 34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토해내며 심한 자책을 하는 여배우의 얼굴에 그리움 가득한 회환의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결과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이 허다하다. 만약 영화나 소설처럼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우리의 결단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삶의 페이지마다 잔잔한 일상으로 전개돼 행복과 낭만과 재미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갑작스런 재난의 폭풍우가 몰아쳐 혼비백산 놀라게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다. 이처럼 인생이 힘들 때 사람들은 미신을 찾거나 종교적 분위기에 편승한다. 새봄에 그렇게 싱그럽던 꽃들은 낙화유수요 여름의 푸르른 신록은 가을에 단풍진 잎새로 변해 점점 떨구어지며 소멸되니 허무한 마음에 찬바람이 스며든다. 가을들판의 추수하는 장면에서 인생의 황혼을 헤아려보게 되는 이즈음 겸허한 모국어로 가만히 기도의 말을 읊조리게 된다. “오른손만큼 가까운 왼손처럼 죽음이 우리와 가깝습니다. 삶의 종착역이 죽음으로 끝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발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외투에서 은혜를 꺼내어 지상의 우리들에게 넉넉한 선물로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