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른다

각본없는 드라마처럼, 굽이치는 물결처럼

by 박정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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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울산 박정관 편집장

국민일보 문서선교사

언론인홀리클럽 회원

도서출판 굿뉴스 대표

브런치 작가

중구뉴스 기자


중앙일보에 한국 근현대사를 멋진 필치로 선보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소이부답(笑而不答)’ 회고록 연재가 끝났다. 일전에 구순의 생일을 맞은 노정객의 ‘소이부답’ 시리즈에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포성이 지축을 뒤흔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정보장교로 활동하면서 ‘큰 일 났구나’를 직감하는 그의 뇌리에 파고든 판단은 정확했다. 일제 36년의 강점기를 거치며 그토록 바라던 해방을 맞았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좌우익의 이념대립은 결국 6.25사변이란 파국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전후 부패할 대로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군사혁명을 결단한다. 역사의 판단은 군사 쿠데타로 규정됐지만 그 거사가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경제발전의 토대가 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로 남겨지게 됐다. 또 그의 서술은 이어진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1974년 8월 15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저격사건이 전개된다. 서울 한복판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연설 도중에 문세광이 쏜 총탄에 피격당한 것이다. 그의 총탄은 박 대통령을 노렸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대통령의 슬픔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조국 근대화의 기치는 한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또 시간이 흐르고 최측근에 의해 대통령은 생의 결말에 다다른다. 예고도 없던 일이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처럼 역사는 대하드라마로 전개되며 파란만장하게 흐른다. JP는 김대중 납치 암살사건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후락 전 정보부장의 독단적 결정이었다고 증언했다. 매스컴에 알려진 바와는 정반대의 진술이었다. 3김으로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정(聯政)을 펼쳤던 그는 과거의 빚진 시간에 대한 자기 나름의 화해의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에게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60년 동안 같이했던 부인과의 사별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 작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조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 손을 꼭 그러쥔 채 묵념하는 JP의 사진 한 장의 무게는 다 헤아릴 수 없이 진중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3김 시대는 막을 내려가지만 그만큼 격동의 세월 앞에 그 만큼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다시 나타날 것인가. 어릴 때 신문지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와 월간지의 단골메뉴였던 3김 시대가 서서히 이울고 있으니, 역사의 물결은 도도히 흐른다. YS의 집권시절,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 돼 전국이 떠들썩하고 부산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모두 김이 빠지고 말았다. 그 후 신문 1면에 광고도 없이 통으로 전면기사가 나간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때 두 사람의 얼싸안음에 곧 통일이 눈앞에 닥친 것처럼 흥분하고 난리가 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단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증오와 대결로만 치닫고 있었는데 수십 년 만에 두 지도자의 극적인 상봉과 포옹에 이산가족을 비롯한 온 국민이 평화통일의 도래를 바랐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시절,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극적이었지만 긴장감은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정상회담 한번으로 골이 깊은 남북한의 존망이 걸린 대치를 단번에 해소할 수 없다는 학습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게 된 것이다. 김정은이 지시한바 그저께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전개됐다. 이에 핵미사일을 탑재한 미국의 B-52 장거리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대응했다. 휴전선에는 대북확성기도 다시 등장했다. 역사는 흐른다. 다시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기억하자. 특히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문단속을 든든히 잘해야 할 때다. (20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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