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처럼 듣고 말하는 것이 거룩함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구 하나 실천하기 위해서는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라고 적혀있음에도 퍼펙트하게 성취하기가 벅차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으로 표현된다. 유대인의 정서에서 거룩함은 구별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속되며 악하고 추한 것들이 죄를 잉태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과의 단호한 결별이 거룩하다는 뜻이다. 한문으로 거룩할 聖자의 뜻풀이는 왕처럼 듣고 왕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왕은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처럼 듣고 말하는 것이 바로 거룩함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사고(思考),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행동, 긍휼지심과 은혜로운 손길로 이웃을 섬기는 것이 거룩함의 실천이다.
또 크리스천의 갖추어야 할 덕목을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서신에 일목요연하게 잘 나열해두었다. “믿음의 기본기에 덕을 더하며,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한다.(벧후1:5~7) 이런 요소들이 있어야 부르심에 굳게 서며 택하심을 견고하게 한다고 조언한다.
또 성경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라야 큰일에도 충성되다”고 말한다.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를 챙기고 그의 어려움을 도우면 그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소하며 작은 것들을 얼마나 무시하는가. 크고 화려한 것을 갈망하며 내 것으로 소유하지 못해 원망하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려고 죽을 만큼 애를 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작은 일에 충성된 자라야 큰 일처리도 잘 감당한다고 했음에도 나는 작은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묵묵히 자기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며 늘 배우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망국의 처지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적국에 팔려갔어도 정신을 차렸다. 3년간 바벨론의 언어와 문화풍습과 예절을 배워 느브갓네살 앞에 섰을 때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다. 절망적인 환경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했고, 거룩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고협찬 하나 없는 단체나 개인이라도 수년 간 취재현장의 부름에 묵묵히 도착했다. 사명이기에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어지간히 현장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빚을 져가면서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어도 묵묵히 감내해왔다. 그런 고진감래의 날을 지나오며 오늘에 이르렀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의 언어를 길어 거룩한 제단에 분향할 수 있었다. 10년 넘는 세월동안 언약의 교회를 담임하는 이금희 목사를 전도사로 섬기며, 신문사의 편집장으로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하고자 애써왔다. 복음적인 관점에서 상담이면 상담을, 기도부탁이면 기도를, 도움에 관한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뿌리치지 않았다. 언약의 교회라는 개척교회에서 굿뉴스울산을 창간해 재정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감당해왔다.
바야흐로 이제는 창대해지는 길목에서 천국의 서광이 비치는 것을 목도한다. 6년 전 이금희 목사는 겁 없이 이 언론이라는 일에 뛰어들었다. 하나님은 ‘세계 속의 한국 굿뉴스울산’이란 슬로건을 주셨다. “그 기치를 들고 잘 달려가면 교회의 부흥도 허락한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 약속을 믿고 복음의 매스스타트를 이어나간다.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행할 때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이 돼야 한다. 성경대로 살아갈 때 성경의 약속한 축복은 나의 것이 된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으면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약속보다 큰 은혜는 없다. 세상에 쫄지 말고 당당히 맞짱 뜨며, 맡겨진 어떤 일이든 잘 처리하는 특공대가 돼 승리의 V자를 당당히 그릴 일이다. 이제 우리를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힘쓸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갑옷이자 칼이며 방패인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