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y Story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친구 민아와의 이별

by 운아당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들인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나의 유년 시절, 이 구절을 공책 맨 앞장에 써놓고 우정을 다짐하곤 했었다. 그때를 되돌려 보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넉넉해지는 친구가 참 많았다. 버스가 달리는 한길에서 약간 경사가 있는 골목길을 올라오면 우리 동네가 있었다. 골목길에서 모퉁이를 돌면 우리 집이고 민이, 정희, 자야, 귀야, 구자의 집이 차례로 붙어 있었다. 윗동네 아랫동네 걸쳐 나의 또래 친구가 남자 여자 합해서 20여 명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눈 뜨자마자 민아 집으로 제일 먼저 뛰어갔다. 밤새 궁금한 것이 많아서 만나면 이야기가 끝이 없고 날마다 새로운 놀이가 창조되곤 했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도 모이기 시작해서 자치기를 하거나 고무줄 놀이, 단방구 놀이, 떼기치기, 구슬치기 등 늘 즐거웠다. 점심 식사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놀다가 점심때가 되는 집에서 밥과 반찬을 꺼내 먹었다. 무쇠솥에 있는 밥이 모자라면 보리쌀 삶은 것을 먹었다. 어른들은 빨리 밥을 짓기 위해 미리 보리쌀을 불려 삶아 대바구니에 걸어 두곤 했다. 일 나간 부모들이 아이들 이름을 크게 부르는 해거름 시간쯤에야 집으로 가곤 했다. 한번은 민아가 윗동네 남자아이한테 맞았다는 말을 듣고 앞뒤 생각 않고 달려가서 육탄전을 벌렸던 적도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2월이었다. 민아가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민아의 부모님은 나이가 많았다. 미국에 있는 언니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미국 언니 있는 곳으로 가면 대학도 갈 수 있다며 보낼 결심을 하였다고 했다.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몇 친구들과 남강 변에 가서 이별식을 하였다. 아직 날씨가 차가운 초저녁이었다. 큰 돌을 세워 놓고 나무를 얹어 모닥불을 붙였다. 불은 훨훨 타올랐다. 우리는 돌아가며 그동안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쉬운 작별을 슬퍼하였다. 사실 민아는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언어도 통하지 않은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라 얼떨떨해 보였다. 우리는 정희가 가져온 호박떡을 떼어먹으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다. 우리 대학을 가게 되면 꼭 만나자고. 미국 도착하면 편지 잊지 말라고.


민아를 보내고 나는 한쪽 날개가 부러진 것 같았다. 날마다 민아 편지가 오기를 기도했다. 정성이 부족한가 하고 새벽에 교회 가서 기도를 하기도 했다. 골목을 걸어가면 앞에서 민아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 같았다. 민아가 떠나고 두 달쯤 되었을까 드디어 편지가 왔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밤을 세워 가며 답장을 쓰고, 때로는 내가 먼저 편지를 쓰기도 했다. 민아와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나의 삶의 동기였다. 그런데 몇 개월쯤 시간이 지나고 민의 마지막 편지가 왔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미국 와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너의 편지를 읽으면 한국에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미치겠고 돌아가고 싶어. 내가 미국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편지를 하지 않았으면 해.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당분간이야. 우리는 꼭 만날거야.”


시간은 많은 것을 묻어버리고, 날려 보내고, 맺힌 것도 스스로 풀리게 하나 보다.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도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에 밀려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십 여년이 지난 어느 날 민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왔다며 보고 싶다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여 마지막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한국 말이 약간 어눌하고 내가 하는 말을 빨리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제 만난 듯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의 약속은 지켜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민아는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고 아르바이트하며 학비를 벌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을 신기해했고 축하한다고 했다. 내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했을 때 ‘Sure’이라고 대답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때 이후로 벌써 사십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떻게 서로 연락이 끊겼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아이 셋 키우며 직장 생활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서로가 생사도 모른 채 오늘에 이르렀다. 얼마 전 혹시나 하고 민아의 부모님이 이사를 가서 살았던 곳을 찾아가 봤다. 두 분 다 돌아가셨다는 이웃 이야기를 들었다. 오빠와 동생이 있었는데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연락할 방법이 없다. 만약 지금 만난다 해도 우린 두 개의 몸에 깃들인 하나의 영혼이 될 것이다.(2023.10.14.<그곳에 내가 있었다>수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