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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Jul 31. 2023

마카리오스 (축복)

그랜마 책이야기, 가난한 어느 목사의 시집

 전에 살던 아파트 지하에 교회가 있었다. 성도들이 많지 않았지만 목사님은 진심으로 신앙심이 높은 분이셨다. 힘들 때나 아이들이 아플 때 교회에 가서 기도도 하고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위로를 받곤 했었다. 새로 이사를 온 후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만나 시집을 한 권 선물 받았다. 마카리오스(축복)였다.


 나는 시집을 넘기다가 맨 마지막 수필 한 편을 읽으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분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었다. "가장 어려운 성도를 마음에 두라"는 단 한 편 있는 수필이었다.


"신앙은 삶과 연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로 시작했다.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 경남 하동의 나환자 정착촌에서 나환우 분들을 섬기며 사역을 하던 이야기였다.  가축을 키우며 생활을 하던 나환우들의 가정을 한 집 한 집 돌아보는 일을 먼저 시작하였는데 성도님들이 정성껏 식사를 차려 주었으나 집에서 냄새가 나고 파리가 날아다니며, 손가락 등 지체가 불구인 분들과 처음에는 한 상에 식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사역 후  첫 크리스마스이브 날 목사님은 이를 놓고 기도를 하던 중 '가장 어려운 성도를 마음에 두라'는 내적음성을 듣고 이브 저녁에 혼자 사는 남자 나환우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불과 베개를 들고 함께 자기 위해.


" 그날 밤 거기서 나는 한 잠도 잘 수 없었다. 그 성도의 천식이 얼마나 깊은 지 밤새도록 피를 토하듯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반성하는 마음이 몰려왔다. 주님은 나를 아시는데 나는 주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주일 예배시간에 기침을 좀 했지만 밤시간에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도 심한 줄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이른 새벽녘에 둘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그분은 몸이 허약하여 일거리도 없었다. 회갑이 지났는데도 동네 아이들이 말을 놓고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곤 했다. 얼마나 이 찬송을 부르셨는지 4절까지 줄줄 외우셨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긴긴 세월 자신을 먹여 살렸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찬송가 588장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는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그분은 찬송을 마치고 60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집 방안까지 들어와 함께 하룻밤을 잔 사람은 목사님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함께해야 안다는 마음이 솟아올라왔다. 함께 있어준다는 것. 아무도 없는 새벽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으나 성탄절 그 성도에게는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날 성탄절 예배에서 '말씀과 삶'에 대해 기도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돕고자 재직회를 열었고 교회 재정의 일부와 교우들의 봉사로 그분의 집을 수리하여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목사님은 2년 반을 그곳 나환자 촌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사역을 하는 동안 양계를 돕고 돼지똥을 치우고, 사모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매일 읍내로 교회 봉고차를 통해 학생들을 통학시키며 삶을 함께 하였다. 아프신 분들을 위해 진주에 있는 의료기관에 모시고 가기도 한 양을 기르는 목자의 삶을 살았다.


 매스컴에서 자주 목사들의 낯 뜨거운 기사를 접하곤 한다. 서울의 대치동 대형교회에서 패싸움을 하는가 하면 예수를 팔아먹는 사이비 목사들, 교회 내 이권 문제로 당회를 개최하다가 대형 싸움이 벌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분  목사님처럼 외롭고 불우한 성도를 돕기 위해 당회를 개최 하려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작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삶의 현장에 성도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온 목회자라면 아니 성도라면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고 회개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안대현 목사님은 아직도 아파트 지하 교회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교회를 새로 지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교회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항상 감사가 생활에 녹아 있다.  '마카리오스(축복)'이라는 시집에는 목사님의 감사의 글이, 사랑과 희망과 축복의 글이 넘쳐난다. 서울의 대치동 큰 교회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이 목사님과 같이 삶과 연계한 신앙을 가진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얼마나 그 이웃이 밝아 지겠는가.(2023.11.11.<있는 그대로>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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