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꽃향기 나는 그녀, 글향
내가 그녀를 만난 건 10년 전쯤이다.
그 당시 나는 국립대학교 국제어학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내 사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왔다. 육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고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석사 학위를 받으려면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팀장님, 영어 시험이 걱정이에요. 방법이 없을까요?”
그녀의 눈빛은 놀랄 만큼 맑고 강렬했다. 순간 나는 어떤 형식적인 상담보다도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일단 영어과 교수님을 찾아가 솔직히 말씀드려 보세요. 분명 길을 열어주실 겁니다.”
담당 교수 이름과 교수연구실을 알려주자 그녀는 고맙다며 자신의 수필집 한 권을 내게 건넸다. 나는 차를 한 잔 내어 놓으며 공부하기 힘들지는 않은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때 시력이 점점 나빠져 책을 읽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볼 거예요.”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녀와의 연락이 끊긴 채 퇴직을 맞았다. 가끔 그녀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쳤다.
어느 날이었다.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들르려다 옆에 있는 병원 1층의 작은 공간의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글꽃향기’
유리문 옆에는 “수필·자서전 쓰기, 독서 모임”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글꽃향기라… 이름이 참 곱다.’
호기심이 발길을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내게 다가와 환하게 웃었다.
“어머, 팀장님!”
바로 그녀였다. 순간, 세월이 한순간에 거꾸로 흘러내렸다.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껴안았다.
“그때 학위는 어떻게 되셨어요?”
내가 묻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수님께 사정을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시험 대신 과제를 내주셨어요. 하지만 논문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수료만 하고 말았죠. 대신 나중에 농대 원예과로 가서 석사학위를 땄답니다.”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녀는 그 뒤로도 쉼 없이 배움을 이어갔다. 딸이 미국에 살아 손주들을 돌보러 몇 번이고 미국을 오갔고, 그 와중에도 헨드폰 사용법을 배우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요즘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요. 시력도 안 좋고 무릎도 시큰거리고 허리도 자주 아파요. 그래도 움직일 수 있을 때는 움직여야죠. 살아있음이 감사하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한 송이 들꽃 같았다. 연약하지만 꺾이지 않는 생의 의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으로, 작은 귀걸이 하나에도 멋스럽다. 시력이 약해져 돋보기를 쓰고도 글을 읽을 때면, 마치 어린 소녀처럼 몰입한다.
그녀를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주름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삶의 향기가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마하트마 간디는 말이 생각난다. 그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눈이 침침해도,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감사한다고 한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 월요일 오후 두 시에 글쓰기 모임을 해요.”
나는 요즘 탁구를 치다가 무릎이 아파서 못 치게 되자 괜히 울적해져 마음이 소심해짐을 느끼던 중이라 그녀의 생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 말에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바로 첫째 날이다. 나는 첫 글을 그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리고 얼마 전 발간한 나의 자전적 에세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책을 그녀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202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