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글꽃 향기
'글꽃향기' 글방을 운영하는 그녀와 함께 합평회를 했다.
그녀에게서는 말과 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녀가 낭독하는 글에는 오래된 시간의 향이 스며 있다.
그 향기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병약했던 세월과 눈물 속에서 길어 올린, 고요하고 진한 향기다.
합평회를 마치고, 우리는 오후 내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다가 보이는 그녀의 집에도 가고, 노을이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을 함께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살아온 인생 여정을 유심히 듣게 되었다.
그녀는 여섯 살 때부터 자주 아팠다고 했다.
언니들이 아버지를 도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머리에 이고 집 마당으로 나를 때,
그녀는 늘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자매들의 웃음소리가 세상의 전부였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때, 이미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병가로 빠지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더구나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학교 탓에 졸업장도 받을 수 없었다.
그녀가 가진 학력이라곤 국민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늘 배움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어린 시절 누워 바라보던 하늘의 구름처럼, 글은 그녀에게 멀고도 닿을 수 있는 세계였다.
젊은 날의 그녀는 배우는 대신 살아내야 했다.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며,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일이 공부보다 더 절실했다.
그 시절의 그녀는 “공부는 사치”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떠나고, 시어른들이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위해 살아볼 차례가 왔음을 느꼈다.
그녀는 마침내 예순의 나이에 검정고시를 치렀다.
그토록 갈망하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받는 순간, 그녀는 손이 떨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희망의 진동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졸업했고,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국어국문학과 석사 논문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수료로 끝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다.
다시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원 입시 면접 날, 국문학과 면접에서는 자신이 직접 펴낸 수필집을 교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산림자원학과 면접에서는 경남 곳곳을 다니며 찍은 고목나무 사진집을 펼쳐 보였다.
“저는 이 나무들의 세월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그녀의 말에는 어떤 꾸밈도 없었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오로지 배움의 열정과 진심이 있었다.
면접관들은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두 번의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는 글쓰기 모임의 첫 시간에 그녀와의 인연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낭독했다.
그녀는 말없이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눈시울을 붉혔다.
“내 인생을 누군가 이렇게 아름답게 글로 써 주다니요.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쁩니다.”
그녀의 목소리엔 한 세대의 고된 시간과,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의 은은한 감사가 묻어 있었다.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는 자신의 삶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내가 육십 넘어서 검정고시 공부한다고 독서실에 있었어요. 집중하느라 핸드폰을 꺼 두었는데,
그때 엄마가 쓰러지셔서 아버지가 전화를 했어요.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확인하고서야 알았고, 그제야 전화를 걸어 엄마가 늦게 응급실로 가게 되었지요.
그때 나는 공부한 것을 후회했어요.”
그녀는 어머니를 빨리 병원으로 모시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짐작이 돼요.
하지만 그 후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증거일 거예요.
어머니도 그걸 아실 겁니다.
당신이 배운다는 건, 결국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드리는 일 아닐까요.
그건 글향님 잘못이 아니에요.”
내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지금도 늘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몸은 여전히 약하지만 마음은 단단하다.
그녀의 글방에는 다양한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인다.
옛날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어른들이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을 걱정하며, 때로는 핸드폰 사용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
합평회 시간에 그녀는 우리에게 늘 말한다.
“꽃이 져도 향기는 남아요. 우리는 그 향기를 쓰는 사람들이에요.”
나는 안다. 그녀의 삶은 한 편의 수필이요, 한 편의 소설이다.
병든 몸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향기로 피어났다.
배움은 그녀에게 단지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회복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된 여정이었다.
그녀의 삶의 향기는 지금도 ‘글꽃향기 글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든 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녀가 써 내려간 인생의 문장은 꽃보다 더 오래 남을 향기가 되어, 우리 곁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