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글꽃 향기
매주 월요일 오후 한 시, 나는 글꽃향기 글쓰기 모임으로 향한다.
그날도 오전부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좀 일찍 오세요. 점심 같이 먹게요. 어묵국 끓여놓을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봄바람이 창틈으로 스미듯 정겹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시골에서 가져온 김장김치가 있다고 밥을 먹으러 오라기에, 내가 키운 노지 상치를 한가득 씻어가 함께 밥을 지어먹었다.
그때의 따뜻함이 오래 남아서, 나는 아침부터 설거지와 청소를 서둘러 끝냈다.
마트에서 오리훈제와 김을 사고 글방으로 가니, 난로 위에서 무 넣은 어묵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달큼한 냄새가 방 한가득 번져 있었다.
다른 두 분까지 합해 네 사람이 둘러앉아 갓 지은 밥에, 상치에 오리훈제를 올려먹고 김장김치를 올려 싸 먹고, 어묵국을 먹으며 소박하지만 임금 수라상보다 근사한 점심 식사 대접을 받았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혼자 먹으면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고 맛도 모른다. 함께 먹는 밥은 마음을 나누는 기쁨까지 더해져 하나의 보약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문제는 늘 그렇듯 설거지였다.
이 글방에는 주방이 없다.
세면대도 없다.
설거지를 하려면 4층 건물 사람들이 모두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로 가야 한다.
게다가 그곳 바로 앞에는 소리에 민감한 소아과 원장이 있어 조금만 소리가 나도 내려와 조용히 해달라며 요청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릇을 하나만 부딪혀도 들릴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내가 설거지 방법을 고민하며 서성이는 동안,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설거지는 제가 할 테니 그냥 두세요.”
그리고는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그릇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화장지로 먼저 깨끗이 닦아내고, 난로 위에서 데워둔 따뜻한 물에 수세미를 적셔 차례로 씻었다. 세정제를 쓰지 않으니 몇 번 헹궈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씻은 그릇은 양동이에 담아 공용 화장실로 향하는데, 그녀의 동작에는 불편함에 대한 짜증도, 체면 같은 것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환경이 어떻든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그녀 특유의 아낌없는 성품이 그때 가장 또렷하게 빛났다.
나도 쟁반을 들고 뒤따라가 씻어낸 그릇을 받아왔다.
하지만 4평 남짓한 글방 안은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차 있어, 그릇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가 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걸 보더니 그녀는 재빠르게 다가왔다.
“여기요.”
전열기 위에 수건을 깔고, 그 위에 깨끗하게 씻어온 그릇을 엎어놓는다.
그녀의 행동에는 ‘될까, 말까’를 따지는 머뭇거림이라는 것이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그 순간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을 선택하는 단순 명료함, 그리고 따뜻함.
그러다 문득 내가 말했다.
“아이고… 주방이라도 한쪽 옆에 있으면 참 좋겠구먼.”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볍게 웃었다.
“저는 이 공간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오래 쌓여 있던 벽 하나가 ‘툭’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늘 환경부터 따져 묻는 사람이었다.
조금 불편하면 일부터 줄이고, 사람 초대는 더더욱 망설였다. 이런 환경이면 나는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안 한다. 그냥 식당 가서 먹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조건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마음을 먼저 움직였다.
보글보글 끓던 어묵국 냄새가 방 안을 맴돌고, 전열기 위에서 그릇이 따뜻한 바람에 뽀송하게 마르고 있었다.
따뜻함은 편리한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흐르는 것인가 보다.
그녀의 거침없고 담백한 마음이 작은 좁은 이 글방을 한 채의 집처럼, 누군가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바꾸고 있었다. (2025.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