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꽃향기 나는 그녀
2023년 9월 5일, 그녀는 미국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일흔의 나이였다.
컴퓨터로 치르는 이론시험을 통과하자 곧바로 실기시험이 이어졌다. 시험장 입구에서 운영자는 그녀를 잠시 세워두었다. 나이를 가늠하듯 시선이 머물렀고, 다시 한 번 서류를 확인한 뒤에야 길을 터주었다. 필기시험은 이미 떨어졌으리라 짐작한 듯한 눈빛이었다고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날, 이제 자유롭게 여행을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에 새로운 세상에 첫 발자국을 내디딘 것처럼 기뻤다.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 산다. 손주들이 어릴 때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아이들을 키웠고, 그 이후로도 해마다 미국을 찾았다. 여행이 목적이라기보다 삶의 일부에 가까운 방문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차를 몰았다. 번거로웠지만, 운전은 그녀에게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방향을 묻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는 자유. 그것을 그녀는 너무 오래 자연스럽게 누려왔다.
그날도 뉴욕 시내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경찰차의 불빛이 켜졌다.
딸에게서 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먼저 움직이지 말 것, 문을 열지 말 것, 면허증을 먼저 꺼내지 말 것. 이 나라에서는 작은 오해 하나가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경찰이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손짓으로 면허증을 요구했고, 그녀는 국제면허증을 내밀었다.
경찰은 말없이 돌아가 긴 종이 한 장을 출력해 건넸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로.
집에 와서 그 종이를 퇴근한 딸에게 보여주었을 때, 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신호 위반, 과속, 정지선 위반, 무면허 운전.
벌금은 3,500달러였다.
억울하면 법원에 가야 했고, 본인이 직접 가야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녀는 말이 없어졌다. 과속을 한 적도, 신호를 어긴 적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천천히 운전한다는 말을 듣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설명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울화를 품은 채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 방문을 앞두고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지 않았다.
대신 결심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그 결심에는 비장함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번에 합격했다. 이제 그녀는 미국 면허증을 가지고 어디든 간다. 그 사실을 특별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2025년, 다시 미국에 입국했을 때 면허증 갱신을 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강화된 규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차량국으로 향했다. 보통은 두 달 넘게 기다려야 하는 절차였지만, 누군가 취소한 덕분에 그날 바로 갱신을 마쳤다. 직원은 그녀를 보며 “귀엽다”고 농담을 건넸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을 웃으며 전했다.
나는 마흔의 나이에 미국에서 6개월을 살았지만, 국제면허증을 손에 쥐고도 운전대에는 손을 얹지 못했다. 길을 모른다는 이유로, 운전석이 반대라는 이유로, 무엇보다 두렵다는 이유로. 나는 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일흔의 나이에 미국 운전면허를 한 번에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아 물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다시 운전할 생각이 드셨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어요. 국제면허증은 인정하지 않으니까, 면허증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그 말에는 억울함도, 자부심도 없었다. 그녀는 지나간 일을 붙잡지 않는다. 닥친 일을 이유로 삼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도전인지, 용기인지 이름 붙이지도 않는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의 삶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지 못한다. 닥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할 고난으로 여기기 않기 때문이다. 그저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널 궁리를 할 따름이다. 그러니 극복의 대상이 없으니 포기할 것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면허증은 그녀에게 자격이 아니라 태도였고,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