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사람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베푸는 사람

by 운아당


새해가 밝았으니 식사 한 번 하자는 글이 밴드에 올라왔다. 글방향기 운영자인 그녀였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겨울 숲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 한 줄기 같았다. 문득 예전에 그녀의 생일이 1월이라는 말을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생일 축하 손 편지를 쓰고, 봉투 하나를 준비해 집을 나섰다. 새해 첫 달 늦은 오후의 공기가 유난히 투명하던 날이었다.


글방에는 이미 다섯 명이 와 있었다. 자주 얼굴을 보며 글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그녀의 생일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케이크를 사 온 사람, 과일을 정성스레 담아 온 사람, 나처럼 봉투를 조심스레 가방에서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식당 안쪽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고, 그 방은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동굴 같았다. 밖의 소음은 문밖에 두고,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 무렵, 또 다른 세 사람이 합류해 여덟이 되었다.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한 자리에 모인 얼굴들이었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는 여기저기 흘렀다. 삶의 사소한 일부터 오래된 기억까지, 서로 말이 번갈아 오갔다. 케이크에 촛불을 올리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나는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우리말로 부르는 생일 노래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이제 나이가 있으니 촛불은 하나만 켰다. 하나의 불꽃이었지만, 그 방을 채우기에는 충분히 밝았다.


그녀의 감사 인사가 끝난 뒤, 나는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녀와는 어떤 길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을까. 나이도, 직업도, 말투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가족처럼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전직 형사라는 남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말은 부드러웠고, 웃음은 너그러웠다. 지금은 강의도 하고 농사도 짓는다고 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신발가게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직원이 돈을 가지고 사라져 경찰서를 찾았을 때, 형사였던 그가 성심껏 도와주었고, 그 인연이 실처럼 이어져 지금까지 닿아 있다고 했다.


젊은 국립대 연구원인 여성은 그녀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에 만났다고 했다. 가끔 차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그녀는 예순을 넘겨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통신대학을 거쳐 산림자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삶의 궤적은 늦가을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조용하지만 단단했다.


산청군 오부면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는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도착했다. 일본어를 배우러 삼천포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고, 그렇게 글방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바쁜 와중에도 멀리서 참석한 것이었다. 또 다른 남자는 색소폰을 배우다 만난 인연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외국어 시험을 준비하던 때, 내가 근무하던 부서에 도움을 받으러 와서 알게 되었다. 그 인연이 이렇게 생일 케이크 앞까지 나를 데려왔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인생 여정에서 스쳐간 길목마다 만난 사람들이었다. 보통 모임이라 하면 학연, 혈연, 취미, 직장 인연처럼 비슷한 결의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의 모임은 달랐다. 삶의 한가운데서 만난 인연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간직해, 시간이 지나도 놓지 않고 이어온 결과였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정성으로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 모임을 그녀가 초청했지만 식사도, 차도 모두 참석한 사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대접하였다.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 살고,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혼자 사는 삶이지만, 그녀는 외로움에 갇혀 있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함께 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에 사람을 대할 때 거짓 없이, 서슴없이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외롭다, 쓸쓸하다, 자식들 전화가 뜸하다고, 마음이 멀어졌다고 아파한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알 것 같았다. 관계는 기다림이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고, 인연을 귀하게 여기며, 스쳐간 만남을 흘려보내지 않는 태도에서 삶은 다시 따뜻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는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냈고,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을 남겼다. 새해의 첫 달, 하나의 촛불 아래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았다. (202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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