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짓는 일

이름 탐험기

by 정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동요가 있는데 이 가사를 나에게 맞게 고쳐 불러본다면... '별명은 하나인데 이름은 서~너~개'가 되겠다. 성이 좀 특이한 편이라 평생 내 애칭, 별명은 성 하나만으로 불리는 게 다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왜 서너 개냐? 이제부터 이름 일대기를 설명해 봐야지.


태어나자마자 내 이름은 우리 엄마, 아빠의 고민거리였다. 친가 쪽 위로 줄줄이 오빠만 여섯이라 내가 첫 여자 아기였는데 할아버지께서 그만... 연순이로 짓고 싶다고 하신 거였다. 내가 태어났을 당시 한참 한글 이름이나 세련된 이름들이 유행하는 시점이라 부모님께서는 이 이름을 듣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지셨다고 했다. 아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할아버지께서는 진지하게 '그럼 연자라고 해라~' 하셨댔나. 그리고 또 뭐였지? 옥분이었나? 암튼 이런저런 후보들이 난무하는 중에 할아버지께서 '저 이름들이 아니면 안 된다!' 버티셨으면 판춘문예급 부자갈등이 시작되는 거였겠지만 아빠의 눙치기 스킬로 자연스럽게 이름 짓기는 엄마, 아빠의 몫으로 넘어왔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비교적 세고 특이한 성씨를 부드럽게 받쳐 줄 '지은'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문제는 이 이름이 그렇게 흔한 이름인지 모르셨단 거다. 흔한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큰 딸이니 좀 더 특별한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으셔서 집에서만 부르는 아명을 또 따로 만들어 불러주셨다. '희재'라는 이름이었다. 딩동댕 미술유치원도 이 이름으로 다녔는데 그땐 호적이랑 이름이 달라도 괜찮았나? 암튼 병원 같은 곳에선 지은이로 살고 집과 유치원에서는 희재로 불리며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원래 이름으로 잘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받아쓰기 시험지에 이름을 당당하게 희재로 적어 냈다고 했다. 엄마가 그 시험지를 보자마자 오해를 풀려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니 안 그래도 지은이가 받아쓰기는 안 틀렸는데 왜 동생 이름을 적었나? 왜 이름을 틀렸지? 생각하셨었다고. 이 이후로는 온전히 지은이로 살게 되었고 희재는 유치원 때 쓰던 물건들에나 쓰여 있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20대 중반쯤에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과감하게 버리고 개명을 했다. 내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서 판사님께 내가 왜 이 이름으로 바꾸고자 하는지 구구절절 간곡한 글도 썼다. 한 번에 통과가 되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새 이름으로 살고 있다.


1. 어릴 때 불리던 이름으로 바꾸었나요? No! 마지막 글자만 바꾸었다.

2. 개명하고 뭐가 달라졌나요? No! 개명을 하면 뭔가 새로운 삶을 살 것 같고 운이 더 좋아질 것 같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냥 '나'다. 나는 이게 너무 좋다. 만약에 내게 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만 뿅! 하고 생겼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슬프고 서운할 뻔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여전히 소중하고 특히 돌아가신 아빠는 내 바뀐 이름도 모르실 거고 20년 넘게 그 이름으로 나의 삶을 살았는데 그 시간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3. 개명하면 뭐가 좋아요?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에 약간 자부심 같은 게 생긴다. 사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바꿀 당시엔 나름 진지해서 사실 철학관에서 이름 후보 몇 개를 받아갖고 그중에 고른 거라 완전히 내가 지은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선택도 내가, 의미도 내가, 법원에 신청도 내가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 브런치 사이트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오'라는 필명은 무슨 의미일까? 정오는 낮 12시를 말한다. 상대방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때, 좋을지 나쁠지 알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칭한다는데 내게 '정오'는 약간 이런 느낌이다. 하루의 한가운데, 오전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오후라고 할 수도 없는 때. 규칙적으로 생활할 때에는 점심시간이라 마냥 기다려지긴 하지만 밥때라 그런가 슉 흘러가버린다. 불규칙적으로 생활할 때에는 제정신으로 낮 12시를 맞이할 확률이 그리 크진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이제 시작하는데 벌써 12시라고? 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시간과 친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혹시나 내 브런치를 오가는 분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정오'인가?'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잘못된 것은 적당히 잘못된 채로 흘려보내는 내 성향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어색함을 딛고 다시 필명을 정의해보려고 한다. 정수리 위에서 해가 반짝하는 시간, 하루가 시작된 지 깨나 지난 것 같지만 끝이 나려면 아직 먼 시간, 그래서 언제든 내가 나의 삶을 사는 모든 순간을 정오라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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