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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Jul 19. 2022

1. 미지의 나라와 사람들

어린이 정경 중 1곡

[Schumann, Kinderszenen Op.15]  

1. 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Of Foreign Lands and Peoples): 미지의 나라와 사람들




 어린이들에게는 사방이 모두 미지다. 잘 알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궁금하다. 지나가는 개미도 매일 가는 급식실 메뉴도 친구 필통 속사정까지 두루두루 눈에 담고 궁금해한다. 그중에서도 나를 스쳐 간 우리 반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였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볼 만큼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특히 저학년을 주로 맡아서 그런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궁금함과 반복되는 질문들이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진짜 사적인 질문들은 철통 방어를 통해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한국에 산다고 해주고 집에 어떻게 가냐고 하면 비행기 타고 날아간다 아님 헤엄쳐 간다고 대답해준다. 나이를 궁금해하면 귓속말로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애들마다 다른 숫자를 불러주고 자기들끼리 서로 맞네 틀리네 투닥거리는 모습을 킥킥거리며 구경한 적도 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대답에 까르르 웃으며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나를 당황케 하는 반응들도 있다. 



"선생님 결혼했어요?" 

"아니~ 선생님은 결혼 안 했어." 

"아~ 그럼 애기는 있어요?" 

"(순간 당황...?) 애기는... 내 애기는 없고... 학교에선 너네가 내 애기야.."

이렇게 허를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한없이 순수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대답에 학부모님께 죄송스러운 일도 있었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예순~" (1학년 2학기 수학 50~99까지의 수 진도 나가는 중이라 그중에 하나 고름) 

"육십 살이요? 우리 할머니도 육십 살인데? 에이~ 할머니네~"

"응~ 할머니니까 말 더 잘 들어야겠네~"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2학기 상담 기간에 교실에 방문하신 그 학생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다가 나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서 다시 나가시고는 반 푯말을 다시 확인하셨다. 혹시 ㅇㅇㅇ선생님 어디 가셨냐고 물어보시길래 제가 ㅇㅇㅇ이라고 하니 너무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었나면...

 내 나이를 듣고 아이가 집에 가서 "엄마, 우리 선생님 육십 살 이래. 근데 할머니인데 할머니같이 안 생겼어."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가 워낙 엉뚱한 말을 잘해서 어머니께서는 '아, 연세는 좀 있으신데 좀 젊게 하고 다니시는가 보다.' 생각하셨다고. 9월 개교 학교에 초임 발령이라 나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탓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나의 대답을 그대로 믿어 준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다.  



 아이들의 수많은 질문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럼 무엇을 궁금해했었나 떠올려 본다. 나도 평범하게 다른 애들처럼 이런저런 호기심들을 품었을 것이고 말로 표현 가능한 궁금함들은 뒤에 물음표를 붙여 질문했을 것이다.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들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나만의 대답을 주워섬기면서 자라나지 않았을까. 

 어른이 된 지금 나의 궁금함은 어떨까? 미지의 나라, 미지의 사람, 미지의 것들은 이제 대부분 작은 네모 칸 안의 검색어로 대체된다. 세상 새로운 것 투성인 뉴스나 신문 기사는 가끔 외면하곤 한다.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선뜻 용기 내어 안녕을 전하기 어렵다. 말을 하려다가도 기력이 없어 관둔다. 오늘 하루 나의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착불 택배비 미리 결제 어떻게 할까요? AS 신청하고 싶은데 출장비 얼마인가요? 엄마 오늘 화이자 맞으러 몇 시에 가셔? 이렇게 답이 명료하게 떨어지는 질문들. 영원히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쉽게 질문하지 않는 현명하지만 포기가 빠른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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