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의 수직적 확장과 수평적 확장
https://brunch.co.kr/@goodpat/54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기술분야가 정해졌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집중적인 기술개발 및 그에 따른 결과물을 특허로 권리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발명의 수직적 확장과 수평적 확장입니다.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은 초기 아이디어를 도출한 뒤 이를 점차 개선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발명의 수직적 확장이란 이와 같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에 맞추어 초기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화 이후,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후속 아이디어들을 순차적으로 권리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특허 포트폴리오에 기술적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입니다. 연구개발이 진행될수록 최초 제안된 기술의 문제점이 보완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덧붙여지면서 기술은 점차 고도화되기 마련입니다. 기업은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과물에 대해 지속적으로 후속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점차 특허 포트폴리오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게 됩니다.
발명의 수직적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이밍이란 후속 아이디어가 도출된 이후 이를 특허로 권리화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특허를 등록받는 데는 선출원주의가 적용됩니다. 동일한 발명에 대해 둘 이상의 특허출원이 있을 때에는 둘 중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만 특허를 허여한다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후속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화가 결정되었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특허청에 출원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기술 개발에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경쟁사도 함께 개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허출원을 지체하다가는 애써 개발을 완료하고도 자칫 경쟁사에게 특허출원의 타이밍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술개발이 전부 완료되어 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에야 비로소 특허출원 여부를 검토합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이나 실제 제품으로의 구현이 끝나야 특허출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검증이나 구현이 특허출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논리적인 타당성만 갖춘다면 충분히 특허로 등록받을 수 있습니다.
발명의 수직적 확장에서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특허출원은 출원 후 1년 6개월이 지나면 그 내용이 일반에 공개됩니다. 특허가 공개되면 해당 특허문헌은 후속 출원의 등록을 거절할 수 있는 선행문헌이 됩니다. 문제는 자신의 후속 특허출원 또한 자신이 먼저 출원한 특허로 인해 거절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위 그림에서 특허출원 1, 2, 3이 모두 같은 출원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출원 2는 출원 1의 공개 전에 출원되었으므로 출원 1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원 3은 출원 1이 공개된 이후에 출원되었으므로 출원 1이 출원 3의 선행문헌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출원 3은 출원 1과 대비하여 신규성, 진보성 등의 특허성을 갖추어야 심사를 거쳐 등록될 수 있습니다.
같은 기업이 먼저 출원하여 공개된 선행특허문헌에 의하여 후속 출원의 등록이 좌절되는 것은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개량기술에 대한 권리화를 검토할 때에는 반드시 앞선 출원의 공개 시점을 함께 살펴보고, 공개가 임박한 경우라면 출원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이미 공개된 이후라면 특허출원하려는 발명이 선행특허와 대비하여 특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기술적 특징을 갖추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발명 내용을 보완하는 등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발명의 수평적 확장이란 어떤 발명에 대하여 도출 가능한 기술적 대안들을 함께 권리화함으로써 포트폴리오 구축 방법을 의미합니다. 발명의 수직적 확장이 특허 포트폴리오의 기술적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면, 수평적 확장은 포트폴리오의 기술적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명의 수평적 확장이 필요한 이유는 경쟁사의 회피설계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기술이 특허로 등록되면 경쟁사는 어떻게든 특허의 권리범위를 회피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를 막거나 적어도 충분한 기간 동안 늦추기 위해서는 경쟁사가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회피 방안들을 함께 권리화함으로써 우회로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명의 수평적 확장 방법 중 하나는 개발 과정에서 제안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제품에 채택되지는 않은 후보기술을 함께 권리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차기 제품에 적용될 후보기술로 기술 A, B, C가 도출되었고, 추가 실험을 거쳐 이중 최종적으로 기술 A가 채택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많은 기업들이 이 경우 제품에 적용된 기술 A만을 특허로 권리화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채택되지 않은 기술 B와 C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권리화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경쟁사로서는 특허기술인 A를 회피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기술 B 또는 C의 적용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술 B와 C의 성능이 A에 비해 떨어진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에도 여전히 기술 B와 C의 권리화는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B 또는 C를 적용한 제품은 특허기술을 채택한 제품과 성능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요자들의 제품 선택 기준은 성능만이 아닙니다. 디자인이나 가격 면에서 차별성이 있다면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기술 A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실시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물론 이것도 특허권자가 합의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입니다), 기술 B와 C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능 차이가 있더라도 경쟁사가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면 특허를 확보해 두는 것이 좋은 전략입니다.
발명의 수평적 확장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경쟁사의 입장에서 특허출원된 기술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권리화하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방법이 기술개발 과정에서 도출되는 여러 대안들을 권리화하는 것이라면, 이 방법은 특허 자체의 분석을 통해 도출되는 가능한 회피안을 권리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해커의 입장에서 보안시스템의 약점을 찾아낸 뒤 이를 보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회피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특허담당자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도출된 회피안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특허관점에서의 분석 뿐만 아니라 회피안의 기술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출된 회피안은 특허 명세서를 보완하거나 또는 별도의 특허로 권리화하는 방법으로 포트폴리오에 추가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한 것 외에도 포트폴리오의 수평적 확장을 위한 여러 방법 및 전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우리가 실시하는 기술만을 특허로 등록받는다고 해서 기술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 제품에 적용된 기술 뿐만 아니라 경쟁사가 채택할 만한 회피안이나 대체기술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넓은 범위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 만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저지하고 개발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