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터(Vector)의 내적

속도(Speed)가 아니라 방향(Velocity)이다

by 박보라


[열심이라는 이름의 마약]


“선생님, 저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잠도 4시간밖에 안 자고, 밥도 편의점에서 때우면서 공부했어요. 근데 성적이 왜 안 오르죠..?”


시험이 끝나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있다. 눈에는 분노와 배신감을 담고서. 그 마음, 이해한다. 그 노력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분명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고, 손가락에 굳은 살이 생기도록 필기했을 것이며, 몬스터를 매일 마셨겠지.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수학은 냉정하다. 피나는 노력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진단할 수밖에 없다. 속력(Speed)은 빨랐지만, 속도(Velocity)는 0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땀을 흘리면 운동이 된 것이고, 책상에 앉아 있으면 공부를 한 것이라고. 고통스러우면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미안하지만, 틀렸다. 방향이 없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리고 노동은 몸만 축낼 뿐, 인생의 결과값을 바꾸지 못한다.


[스칼라(Scalar)와 벡터(Vector)의 결정적 차이]


물리학과 수학에는 두 가지 종류의 물리량이 있다. 바로 스칼라(Scalar)와 벡터(Vector). 스칼라는 크기만 있는 양이다. 몸무게, 부피, 그리고 속력(Speed). 반면,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가지는 양이다. 힘(Force), 변위, 그리고 속도(Velocity).


인생을 스칼라로 사는 사람들은 양(Quantity)에 집착한다.

“나 오늘 14시간 공부했어.”

“나 오늘 문제집 50페이지 풀었어.”

이들에게 중요한 건 숫자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푼 문제의 개수. 이것들은 스칼라다. 크기만 있고 방향은 없다. 하지만 성취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인생을 벡터로 설계한다. 그들은 묻는다.

“이 14시간이 내 목표를 향해 정확히 꽂혔는가?”

“이 문제집 50페이지가 나의 약점을 정확히 타격했는가?”

내가 아무리 시속 100km로 달린다고 해도(엄청난 스칼라), 그 방향이 낭떠러지라면? 혹은 제자리에서 러닝머신만 뛰고 있다면? 에너지는 썼지만, 내 위치의 변화(변위)는 ‘0’이다. 이것을 우리는 종종 삽질이라 부른다.


[벡터의 내적 : 노력의 효율을 계산하다]


노력이 성과로 바뀌는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공식이 있다. 바로 벡터의 내적(Dot Product)이다. 물리학에서 일의 양을 구할 때 쓰는 공식이기도 하다.

W=vector F vector s = |F||s|cos θ

여기서 W는 내가 한 일(성과), F는 내가 쓴 힘(노력), s는 이동 거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수, cos θ. 여기서 는 나의 노력과 목표의 방향 사이의 각도다. 이 공식은 명확한 사실 하나를 가리킨다.


θ가 0도이면 cosθ=1


나의 노력이 내 목표와 일치해서 그 각도가 0도일 때, 이때 코사인값은 1이다. 내 모든 에너지가 손실 없이 성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몰입의 상태.


θ가 90도이면 cosθ=0


이건 비극의 시작이다. 내가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방향이 목표와 수직으로 어긋나 있으면 결과값(W)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0이 된다. 벽을 하루 종일 밀어보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겠지.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 일의 양은 0이다. 내일 국어 시험인데 지금 중국어 공부를 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서류 작업에 야근을 하는 것. 이게 곧 가 90도인 상태다.


θ가 180도이면 cosθ=-1


최악의 경우다. 코사인 180도는 -1이다. 내가 향해야 할 방향과 완전 반대 방향. 열심히 하면 할수록 결과는 마이너스가 된다. 잘못된 투자, 나쁜 습관의 반복, 도박에의 몰입.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대체로 인생 내내 우리가 억울한 이유는 힘(F)을 안 써서가 아니다. 값에 대한 점검없이 무작정 달리기 때문이다.


[헬스장의 벡터 : 자극점을 찾아라]


헬스장에서도 이 벡터의 원리는 지배적이다. 가슴 운동인 벤치프레스를 한다고 치자. 목표는 가슴 근육(대흉근)에 자극을 주는 것. 그런데 어떤 사람은 팔 힘으로만 든다. 바벨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고, 땀도 흘리고, 힘들기도 하다. 겉보기엔 똑같은 벤치프레스다.


하지만 다음날 가슴은 멀쩡하고 어깨와 팔꿈치만 아프다. 왜? 힘의 벡터가 가슴 근육의 결 방향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0). 근육을 정확히 타겟팅하는데 실패하고, 무게를 드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잡아버렸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었다. 운동하는 사람들 중엔 무게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가벼운 무게라도 근육의 결대로 정확하게 꽂아 넣는 사람들. 그들은 각도에 미친 사람들이다. 팔꿈치 각도를 1도만 틀어도 자극이 날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부도 뇌를 타겟팅하는 운동이다. 책상에 앉아 있는 행위 자체는 벤치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텍스트라는 중량을 내 뇌의 사고력 부위에 정확히 꽂아 넣고 있느냐는 것. 눈으로는 글자를 읽는데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한다? 각도가 틀어진 것이다. 문제집은 풀고 있는데 채점만 하고 틀린 이유를 분석하지 않는다? 자극은 완전히 빗나가겠지. 이건 공부가 아니라 노동이다. 관절(몸)만 상하고 근육(뇌)은 크지 않는다.


[속도가 아니라 각도다]


우리는 속도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빨리 돈을 벌고,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그래서 다들 러닝머신 위에서 미친 듯이 뛴다. 하지만 잘 생각하자. 방향이 틀린 속도는 재앙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건, 목적지에서 가장 빠르게 멀어지는 방법일 뿐.


학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펜을 내려놓게 한다.

“지금 무작정 문제 풀지 마. 네가 이 문제를 왜 틀렸는지, 이 단원의 출제 의도가 무엇인지(방향) 먼저 생각해. 각도가 안 맞으면 100문제를 풀어도 헛수고야.”


어른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격증을 따고,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새벽에 일어난다. 그게 인생을 바꿀까. 그건 그냥 스칼라(크기)를 늘리는 행위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내적 값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그 노력이,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같은가. 우리의 θ는 0도인가, 90도인가 아니면 180도인가. 혹시 남들이 뛰니까 불안해서, 방향도 모른 채 러닝머신 속도만 올리고 있지는 않으신지.


[잠시 멈춰 서는 용기]


벡터의 내적 값이 최대가 되려면, cosθ=1이어야 한다. 나의 시선과 목표의 시선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 이 각도를 맞추기 위해선 잠시 멈추는 것도 필요하다. 헬스장에서 세트 사이사이 쉬면서 자세를 점검하듯, 공부 중간중간, 업무 중간중간 멈춰서 나침반을 봐야 한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이 노력이 내 목표를 타격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이것은 영점 조준 사격과 같다. 조준하는 데 10초를 쓰고 1초 만에 명중시키는 것이, 조준 없이 100발을 난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내 땀을 의심하지 말자. 우리의 노력은 죄가 없다. 다만, 그 노력이 증발하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건 우리 몫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다. 인생 벡터가 목표를 향해 정확히 정렬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작은 노력조차 거대한 성과로 치환되는 벡터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각도를 좁혀라. 그리고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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