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머문 곳 #177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음악이 더 이상 형식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생각의 흐름,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의 결, 그리고 침묵에 가까운 질문들이다.
이번에 함께 듣는 세 곡,
피아노 소나타 27번(Op.90), 28번(Op.101),
그리고 **29번 「함머클라비어」(Op.106)**는
베토벤이 고전주의의 언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새로운 음악적 사유로 건너가는 결정적인 지점에 놓여 있다.
Op.90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유난히 ‘말을 건다’.
과장도, 장식도 줄어든 대신
선율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첫 악장은 감정과 표현이 쉼 없이 이어지고,
두 번째 악장은 느리고 노래하듯 흐르며
마치 조용한 고백처럼 귀에 남는다.
여기에는 영웅도, 투쟁도 없다.
다만 내면을 향한 솔직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Op.101은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간다.
형식은 부드럽고 친밀해 보이지만,
음악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묻는다.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나아가고,
익숙한 듯하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어드는 이 소나타는
베토벤이 ‘소나타’라는 틀을
하나의 회상과 사유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Op.106,
「함머클라비어」에 이르면
피아노 음악은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 된다.
이 곡에서 베토벤은
연주자의 기술을 시험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청자의 인내, 사고, 집중력까지 요구한다.
느리고 긴 아다지오 악장은
시간이 늘어나는 듯한 착각을 주고,
마지막 악장은 음악이 사고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는 연주를 위한 작품이기보다는,
사유를 위한 음악에 가깝다.
00:0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B♭장조 「함머클라비어」, Op.106 – I. Allegro
13:2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B♭장조 「함머클라비어」, Op.106 – II. Scherzo: Assai vivace
16:15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B♭장조 「함머클라비어」, Op.106 – III. Adagio sostenuto
33:3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B♭장조 「함머클라비어」, Op.106 – IV. Largo – Allegro risoluto
46:21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7번 e단조, Op.90 – I. Mit Lebhaftigkeit und durchaus mit Empfindung und Ausdruck
52:48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7번 e단조, Op.90 – II. Nicht zu geschwind und sehr singbar vorgetragen
1:00:4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8번 A장조, Op.101 – I. Allegretto ma non troppo
1:05:1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8번 A장조, Op.101 – II. Vivace alla Marcia
1:10:36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8번 A장조, Op.101 – III–IV. Adagio, ma non troppo, con affetto – Allegro
연주: Paul Pitman (Piano)
저작권: Public Domain
음원 출처: Musopen.org
감상링크 : [https://youtu.be/8S7Dq1IQc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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