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머문 곳 #178
어떤 음악은
시대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대를 느끼게 한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바흐의 아들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지기엔
그의 음악은 너무도 분명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는 바로크의 질서가 서서히 힘을 잃고,
고전주의의 균형이 아직 자리를 잡기 전—
그 불안정한 경계에서
음악을 감정의 언어로 바꾸어 놓은 작곡가였다.
그의 플루트 소나타들을 듣고 있으면
음악이 말을 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웅변하지 않고,
정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감정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둔다.
첫 곡인 G장조 소나타는
C. P. E. 바흐의 음악 가운데서도
비교적 맑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다.
플루트와 건반은
주인과 반주의 관계를 벗어나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나아간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생동감이 있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직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
그러나 이미 변화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한 시대의 공기가 느껴진다.
이어지는 세 곡은
플루트 소나타 C장조 H.515의 세 악장을
트럼펫과 콘티누오 편성으로 옮긴 연주다.
플루트가 지녔던 부드러운 선율은
트럼펫을 통해
보다 또렷한 윤곽을 갖는다.
감정은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각도에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느리게 사색하는 안단테,
경쾌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알레그레토,
그리고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알레그로까지—
이 편곡은 C. P. E. 바흐의 음악이
특정 악기의 성격에 묶이지 않는
유연한 감정 언어임을 보여준다.
고전으로 향하는 조심스러운 발걸음
마지막에 놓인 B♭장조 소나타는
앞선 곡들보다 한층 정제된 인상을 남긴다.
감정의 급격한 흔들림은 줄어들고,
형식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이 음악 안에서
우리는 C. P. E. 바흐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바로크의 장식에서 멀어지고,
고전주의의 질서로 다가가는
그 조심스러운 이동의 순간이
이 소나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C. P. E. 바흐의 음악은
“이렇게 느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각자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조용한 자리를 내어준다.
오늘 이 음악이 머문 곳에서도
누군가는 잠시 생각에 잠기고,
누군가는 오래된 감정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흘러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음악은 그렇게,
머물다 가는 것으로도
이미 제 역할을 다하니까.
C. P. E. Bach – Sonata in G major
C. P. E. Bach – Flute Sonata in C major, H.515
(II. Andante / I. Allegretto / III. Allegro, arr. for trumpet & continuo)
C. P. E. Bach – Flute Sonata in B-flat major, H.552
감상 링크 : [https://youtu.be/bxGKo_ttt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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