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Melancholia) -정상의 범주-

영화 리뷰

by Hong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식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슬픔을 공유하는 것. 가령 오롯이 자신만이 슬프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나도 슬프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조금 응용하면 누구의 슬픔이 더 깊은지 비교하며 그 어이없음에 실없는 웃음이라도 되찾을 수도 있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리뷰를 쓴 <디태치먼트>가 그러한 메시지를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온갖 이유를 끌어들여 슬픔을 아파할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끌어들일 이유는 수없이 많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지각하는 감각을 멋대로 뒤집어서 슬픔을 쾌락으로 인식한다거나, 예술가처럼 감정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슬픔을 필수불가결 요소로 여기는 것 등 그냥 갖다 붙이기만 하면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


<멜랑콜리아> 역시 그러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를 끌어다 갖다 붙인 이야기이다. 때문에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슬픔을 합리화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희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서도 말했듯 합리화의 이유는 좀처럼 중복이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많으니까.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멜랑콜리아>에서 선택한 위로 방식은 위의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하므로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의 보편성을 보이며 누구나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슬픔은 아파할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한다. 본 작품에서 슬픔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구원인 것으로 일종의 예찬에 가까운 태도로 드러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함께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살펴보자.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지만, 어쩐지 슬퍼지는 모습들의 연속이다. 타오르는 캔버스, 적색거성을 가리는 어두운 행성, 부케를 든 채 떠내려가는 신부 등. 하나같이 슬픔과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 찬 이미지들이 느리게, 덧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폭발하는 행성. 작중 시도 때도 없이 의문의 행성이 등장하는 것까지 보면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반전 없는 결말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종말을 향한 출발. 끝의 시작.

곧 그와는 상반되는 저스틴과 마이클의 행복한 미소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이미 오프닝과 동시에 가라앉은 감정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종말이 예고된 순간 우리의 감정 역시 시한부처럼 일종의 제약이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감독도 딱히 감정의 혼선을 원하지는 않는지 결혼식에 가려질뻔한 저스틴의 실체를 곧바로 드러낸다. 케이크를 잘라야 하는 순간 목욕을 하고 있는, 방의 인테리어를 제멋대로 바꾸는, 신랑 대신 초면의 남자와 관계를 맺는 그녀는 그야말로 충동적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가 다투면서 원인을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그녀의 대응은 분명 과한 것이 사실이다. 충동조절장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연하게도 식은 파탄이 난다. 식만이 아니다. 저스틴은 이별을 암시하며 떠나고, 상사로부터는 해고를 통보받는다. 이렇듯 1부 저스틴을 통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건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둘의 사랑은 실수로 성립되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과, 저스틴이 비정상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곧 회복 될 조짐이 없어 보이는 게 분명한데 어쩐지 저스틴이 비정상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는 느낌이다. 과연 그녀는 비정상일까?


2부 클레어


2부의 시작과 함께 한 행성이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처음엔 흑색이었지만, 이젠 청색인 행성 멜랑콜리아. 이해가 조금 더딘 관객도 오프닝의 행성 폭발신에 다시 의구심을 가질만한 장면으로 종말에 대한 암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저스틴의 모습도 드러난다. 도움 없이는 씻지도 못할 정도로 무너진 그녀이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장면이다. 그녀만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는 것.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접근할수록 인물들의 숨겨진 모습들이 드러난다. 문명과 과학의 신봉자인 존은 아내 클레어에게 아무런 걱정 할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대량의 생필품을 사들인다.

클레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사고가 멜랑콜리아로 향해 끝내는 관객까지 전염시키고 마는 그녀의 불안감은 자살을 대비한 약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부와 대비되는 모습들이다. 정상적이라 인식되었던 인물들이 비정상의 범주로 들어온다. 종말을 마주한 인간들의 이상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들이 철저하게 숨겨왔던 모습이 이제야 드러났다 생각했는데, 사실 큰 이유는 없고 그것이 슬픔을 위로하는 데 더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군데씩은 고장 나있다는 것. 그것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 슬픔의 공유법.


반면 저스틴은 멜랑콜리아가 가까워질수록 정상인이 되어간다. 아니, 나체로 멜랑콜리아의 빛을 받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초능력까지 드러내는 그녀는 정상인을 넘은 초인 혹은 외계인처럼 보인다. 너무나 담담하고 평온해서 클레어의 불안감에 감염된 관객들이 떨고 있는 순간 유일한 안정제로 작용하는 그녀. 글쎄, 그녀는 멜랑콜리아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종말 앞에서 오히려 웃음을 되찾은 듯한 저스틴


종말이 오자 존은 클레어가 사둔 약을 먹고 시체로 마구간에서 발견된다. 클레어는 발광하고, 저스틴은 초연하다. 1부의 정상인과 비정상인이 완벽하게 뒤바뀐 순간이다. 삶이 지옥인 사람에게는 종말이라는 것도 별 게 아니었던 것일까.


계속 언급했듯 슬픔의 위로를 위한 자의적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우울증 환자로 진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2부에서 드러났듯 그녀만이 이해할 수 없는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점이 잘 드러나는 곳에 있다 해서 환자로 진단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다 해서 정상인이라 진단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따라서 해석은 두 가지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겠다. 모두가 정상이거나, 모두가 비정상이거나.

누군가에게 비정상으로 비칠 수 있는 결함 한 가지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정상일까? 아니면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비정상인걸까?


우주의 96%가 암흑으로 뒤덮여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그녀의 질문의 꽤나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둠에 물들지 않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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