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서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콘택트(Arrival).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로 유명한 빌뇌브 감독이 참여하기로 알려지면서 제작 초기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온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관적인 의견을 좀 보태서 이 경우엔 그 기대치에 감독보다는 원작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는 SF에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도 전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으니까.
때문에 지금부터 줄기차게 본 작품을 까대는 이유에 그러한 개인적인 실망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원작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객관적으로도 까일 이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른다고 생각하니, 스스로의 감정 조절도 할 겸 핸디캡 삼아 원작과의 비교를 최소화하며 비평을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본 작품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첫 째는 허접한 전달력이고, 두 번째는 비슷한 맥락에서 개연성에 관한 것이다. 굳이 구분해서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헛웃음이 나왔던 지점은 몇몇 군인들이 일탈을 저지른 순간이다. 사실 그들의 행위가 외계인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헵타포드들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확신시켜주는 장면이기도 하며 외계인을 공격한다는 것도 상식까지 벗어날 정도의 큰 오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공격을 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서스펜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고 생각되었던 장병들의 가족과의 통화 장면 등이 TV 속 우주 전쟁론과 결합하여 일종의 미신과 같은 형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뉴스를 보다 공포에 절어 멋대로 외계인을 공격했다? 시카리오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실감 나게 그려냈던 감독이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건 처리 이후 웨버의 대사도 그야말로 압권이다.
'TV를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도망가는 것보다 외계인을 죽이기로 한 모습이야말로 리얼한 군인정신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설득력 떨어지는 무책임한 사건 전개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마침 군 얘기가 나왔으니, 그 점도 마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중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랑스러워할 것인지, 화를 낼 것인지 궁금했는데 내가 추측해본 적도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워할 점은 그들의 국방력이다. 본 작품 속 카메라의 앵글은 주로 미국에 머물러있지만, 상황을 이끄는 것은 섕 장군을 필두로 한 중국이다. 현실에서도 아시아의 깡패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그들의 무력을 감안하였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오버스러움에 할 말이 없어진다. '무기'라는 단어 하나에 곧바로 우주 전쟁에 돌입하는 그 급한 성미는 둘째 치더라도, 중국의 한 마디에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뜻을 모으며 전쟁 준비에 돌입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이러한 매우 당황스러운 사건 조성에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나는 위와 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혈질 똥멍청이로 그려진 섕 장군의 모습에 중국인들이 화를 낼 것인지, 그의 한 마디에 세계가 벌벌 떤다는 치사량의 중화사상 뽕에 취해 자랑스러워할지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한 표를 던지는 바인데, 이유는 정체 모를 국제전화 한 방에 의지를 굽혔기 때문이다. 스팸 차단 앱만 깔았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감독도 스스로 벌려놓은 사건이 감당이 안 되는지 그를 정지시킨 유언 한 마디는 자막으로도 생략해버렸다. 감탄했다. 희대의 명대사 혹은 흑역사 둘 모두를 포기하다니)
결국은 기승전결을 위해서다. 시상을 일으키고, 국면을 전환시킨 뒤 마침내 그것을 묶어 여운을 남기기 위한.
하지만 인생에서의 로또 한 방과는 달리 영화에서 과정 없는 결말은 나올 수가 없다.
본 작품의 결말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3000년 뒤 벌어질 사건에 상부상조하기 위해 외계인이 지구에 화합과 평화를 선금으로 주고 갔다." 가 되겠다. 터미네이터 뺨 칠 정도로 간결한 메시지이지만, 놀리지는 않겠다. 다만, 내가 까는 것은 그 간결한 메시지조차도 똑바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외계인이 준 선물은 바로 루이스에게 전해준 그들의 언어이다. 지구의 어떤 언어들과도 달리 작성하는 순간이 동시에 끝인, 따라서 시작과 끝맺음을 작성 이전에 알고 있어야만 하는 언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라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 루이스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이지만, 원작과는 달리 본 작품에서는 이 지점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루이스가 언어를 접하는 순간부터 미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자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해석도 전에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루이스는 드문드문 미래를 보게 된다. 수많은 이들이 같이 문자를 봤지만, 어째서 그녀만 미래를 보게 된 걸까? 조금 양보해서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야 그 능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설정이라고 해도, 그녀만이 미래를 보게 된다는 것은 확실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계인이 그녀에게만 선택적으로 능력을 부여했다는 의미가 되니까.
두 번째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헵타포드들이 언어를 전달한 것은 3000년 뒤 벌어진 사건에 대한 대비로 먼저 지구에 평화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메시지는 루이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고, 루이스의 미래에서 각국 정상이 모인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을 때 범지구적 화합 역시 이루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루이스가 인류의 평화를 조성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조금이라도 표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런 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것은 이따금씩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미래의 딸 한나(Hannah) 뿐이다. 죽음이 예정된 딸.
조금 비인간적일 수도 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통해 드러난 루이스의 삶에서 드러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이혼과 자식의 죽음. 결과론적으로 보면 결혼을 통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으로 쉽사리 행복과 연결 짓기 어려운 미래다. 따라서 관객에게 그럼에도 루이스가 그러한 길을 걷는 이유가 드러나야만 하는데, 어렴풋이 짐작할 만한 요소는 앞서도 언급했듯 한나뿐이다.
죽을 너를 사랑한다는 말. 글로 쓰니 그럴 듯 하지만, 작품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유가 드러나지 않기에 미래가 선택적인 것인지, 불가항력적인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외계인은 요청했고, 화합은 벌어졌으며, 한나는 죽었지만 루이스는 이안을 만난다. 그 사이를 메꾸는 것은 수많은 추측뿐이다.
시작이 동시에 끝인 작품들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의 묘미는 과정을, 그 이유를 파악하는 데 있다. 하지만 본 작품은 그 과정을 보여주지도 않으며, 추측할 요소도 불명확할 뿐이다. 때문에 나의 이해가 전적으로 원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작이 있지만, 재현에도 실패한 본 작품에 대해 나는 영화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이 결여된 소설이 그러하듯, 상호작용성을 못 갖춘 게임이 그러하듯, 시각적 이미지를 보임에도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영화는 매체적 관점에서 실패작이다.
루이스는 처음과 끝이 자신에게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했지만, 처음과 끝조차 무의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