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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 Magazine Oct 22. 2021

글쓰기, 단 한 권으로 종결! (정말로)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마사지 삼인조가 읽었던 글 중 구미가 당긴 단락을 공유합니다.

역시 정수는 요약이 아닌 원본에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사견이라는 이름의 양념을 칠 뿐입니다.




<그냥 문법 교재 아닌가?>


-3.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 교열을 해 온 저자의 책입니다. 이 책을 예찬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구성입니다. <수학의 정석>처럼 앞부분만 열심히 따라가다 흥미를 잃는 ‘글쓰기 교정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짚어준 내용을 복기할 수 있는 ‘실전 적용’이 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연습할 수 있는 예제를 자연스럽게 제공해주죠. 





-2. 구성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차하면 문학 실용서라는 기묘한 카테고리에 속할 뻔했지만 중간중간 본인이 교열을 담당했던 저자와의 이메일 같은 수필을 추가해 산문집의 역할 또한 충실히 해냅니다.




<글, 말 그리고 삶의 삼각 관계>


-1. 그다음으로 메시지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 때에는 더 나은 나의 글을 위한 기대로 가득했으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에 채워진 것은 더 나은 삶의 태도였습니다. 저자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는 글쓰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해당합니다. 덕분에 “이전에도 이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래야 한다”보다 “원칙은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0. 글은 말과, 말은 다시 삶과 끊임없이 공명합니다. 좋은 글이라는 표현은 추상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좋은 삶이라는 것 또한 각자의 정의로 세워지는, 결과가 아닌 과정 아니겠습니까.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죽기 직전까지 갈망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여정의 훌륭한 동반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소개합니다.



글과 말, 삶의 공명 관계




<의심은 편견에서 벗어나는 길>


1. 자기 글에서 이상한 부분을 빠짐없이 짚어 낼 만큼 완벽하게 객관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글을 쓰기 전부터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문장을 궁글린 데다 쓰고 나서도 여러 번 읽었을 테니 자연스레 눈에 익게 되고 마음에도 익게 된다. 확신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2. 그 확신을 독자들도 그대로 맛보게 하려면 많은 사람이 여러 번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러니 편견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가 아니라 늘 확신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글쓴이의 몫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문장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편견 말이다!



삶, 글 모두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 핵심




<우리말에 원래 없는 표현인데요>


3.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에 쓰인 바로 그 ‘-적’이다. ‘적적적’ 하는 게 영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 빼 버릴 수도 없다. 우리말에 원래 없는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원래’를 따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서인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적, 적, 적.



4. 더군다나 그 대상이 말이라면 ‘원래 없다’는 말만큼이나 이상한 말이 또 있겠는가. 말이 무슨 화석이 아닌 다음에야. 다만 안 써도 상관없는 데 굳이 쓴다면 그건 습관 때문이리라. 가령 다음과 같은 표현처럼.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


어쩐지 ‘-적’이 부담스러워 보인다. ‘-적’을 빼고 다시 써 보면,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


훨씬 깔끔해 보인다. 그렇다고 뜻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기는커녕 더 분명해졌다.




<일본어 번역체입니다 / 영어 번역체입니다>


5.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다. 써서는 안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될 뿐이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낱말이나 표현 같은 건 없다.



없을 땐 어떻게 살았을까요



6. 일각에서는 외국어에서 온 표현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한국어 이용자가 수억 명 정도 된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1억 명도 안 되는 현실에서 언어 순혈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자칫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다. 외국어에서 온 표현이라도 더 다채로운 한국어 표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려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



7. 다만 한국어 표현을 어색하게 만든다면 굳이 쓸 필요 있겠는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 글자라도 더 썼다면 그만한 효과가 문장에 드러나야 한다. 게다가 다른 언어에서 빌려 온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면 더 말할 필요 없겠다.




8.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하다. 모든 사랑이 다 이상한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다. 만일 내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나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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