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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빛나 Aug 27. 2015

천사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여름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얘들아

마지막 교생실습이 두 달 전에 있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안 그래도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시기여서 그런지 다들 마지못해 가야 하는 실습이었다. 나도 물론 그랬다.

큰 기대를 하지 않던 나의 마지막 실습은 그렇게 '마지 못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었다.

4학년 3반의 아기자기한 창가 풍경

내가 맡은 반은 4학년 3반.

첫 날부터 껌딱지처럼 달려들어 온갖 질문세례를 퍼붙던 아이들이었지만,  그중 유독 한 아이만큼은 혼자 멀찍이 앉아만 있었다. 여느 아이들과 달리 나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희미하게 "네.." 또는 "아니오.."하고 대답만 하던 아이였다. 처음엔 원래 저런 아이인가? 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 간 그 아이에게서 슬픔 가득한 눈빛을 보았다. 그 사연 있는 눈을 쉽게 지나칠 수 없어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그 아이에 대해 여쭤봤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아이 답지 않게 슬픔 가득한 눈망울에는 이유가 있었다.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나도 아직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해 본 적이 많지 않은데 11살 꼬마에게는 얼마나 큰 슬픔이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그 아이의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까. 섣부른 위로의 말과 관심은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아픔이 될 것 같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욕심 부리지 않고 아이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천천히 다가가기로 했다.

진심을 가지고. 천천히.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매일 아침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인사하고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려 주었다. 졸지에 주변 아이들의 캐릭터도 그려주느라 매일 정신없었지만, 그러면서 아이 주변으로 다른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늘 혼자였던 그 아이에게  한두 마디씩 말을 걸어 보이는 아이가 생겼다.

점심시간이 되면 늘 혼자 조용히 밥만 먹던 아이 옆으로 가서 먼저 말을 걸고 가벼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어릴 때 시금치가 정말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졌어. 너는 어때?"

"우와, 김치 정말 잘 먹는데? 대단하다!"

점심을 다 먹으면 피구를 하러 나가는 아이들과 함께 그 아이 손을 잡고  나갔다. 처음엔 내켜하지 않는 것 같더니 며칠이 지나자 이젠 내가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실내화 가방을 들고 내 옆에 수줍게 서서 내가 얼른 밥먹기만을 기다렸다.

밖에 나가서 처음에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피구하는 곳 근처에 조용히 앉아 구경만 하곤 했다. 며칠 뒤 내가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고 그 뒤론 어느 새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겁게 피구를 했다. 그렇게 작은 변화가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일어났다. 작은 변화에도 난 정말 기뻤고, 그 때마다 아이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칭찬을 해주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아이와 한층 더 가까워졌고, 아이는 내게 먼저 인사를 하고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가 웃어 보일 때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고, 가슴이 벅찼다. 이젠 아이와 둘이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다들 집에 가면 난 아이와 교실에 남아 둘 만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요즘 학교 생활과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차츰 마음을 열어 보이는 걸 확인하고, 난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던 외할머니와의 이별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날 많이 사랑해주셨고 키워주시다시피 하셨던 우리 외할머니였는데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애 첫 이별이라 너무 큰 아픔이었다. 아이의 마음도 그때의 내 마음과 조금은 같지 않았을까. 조금이나마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다.

내가 그 당시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담담히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이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없이 아이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 아이가 그동안 갖고 있던 그 큰 슬픔을 어떤 말이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어느 말보다도 그 아이에겐 따뜻한 포옹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이의 얼굴에는 슬픈 눈만 아른거린다 (아이가 직접 그린 자기자신)

그렇게 그 아이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눈 후, 정말 놀랍게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전보다 웃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젠 내 눈을 보고 내 말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모둠활동도 곧잘 함께하고, 먼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처음에 그 아이를 만났을 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교생들은 자기 학급에서 한 아이를 관찰하고 사례보고서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난 그 아이를 관찰한 한 달 동안의 기록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썼고, 운 좋게 마지막 교생실습 날 교생 대표로 사례발표를 하게 됐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정말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후련함 그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결국 눈물을 쏟았고, 그건 결코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슬픔의 눈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왈칵...

교생 마지막 날, 한 달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게 해 준 우리 천사 같은 4학년 3반 친구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왔다.

녀석들, 언제 준비했는지 '교생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예쁜 손글씨로 꾸민 표지와 그 안에 담긴 26명 아이들의 예쁘고 소중한 편지를 받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녀석들은 날 울린다.

못 해준 것들만 떠올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동안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기적을 경험하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그 한 달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 못해'로 시작했던 나의 뜨거운 마지막 교생실습은 '잊지 못할' 고마운 경험으로 끝났다. 천사 같은 이 녀석들 덕분에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날 붙잡던 천사 같은 아이들을 보며 난 결심했다. 아이들의 편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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