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과 지하철 중 어떤 단어가 익숙한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민은 지하철을 왜 전철이라고 하냐며 주인공을 핀잔주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하철보다는 전철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어렸을 때부터 수원에서 자란 나는 지상 위를 달리는 전철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 생각해 보면 일호선에서 한강과 63 빌딩을 본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도 다 지하철은 아니지 않은가. 전철이 맞다고 생각하는 나는 뼛속까지 경기도민인가 보다.
충청도 천안에서 나고 자란 남편에게 지하철과 전철 중 어떤 표현을 더 많이 하는지 물어봤다. 남편은 당연히 지하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너와 다른 ‘서울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로 통학 및 출퇴근을 하며 살았는데(편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니 오래 걸리긴 했다), 천안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빴다. 대학 때 잠깐 서울에 살았다고 자신은 서울사람이라니!
남편은 중학교 때까지 천안에서 살고, 고등학교는 공주에서 기숙학교에 다녔다. 대학 때는 통학을 위해 서울에서 자취를 했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천안이 아닌 서울에서 놀았다. 울산에도 지사가 있는 회사에 입사지원 하면서 본인은 지방에 발령이 나면 입사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고도 했다. 아무리 우겨도, 남편은 서울사람이고 싶은 충청도 천안 사람이다. 논리에 맞지도 않고 자기 위주의 편협한 생각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이 웃기면서도 문득 고향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 또는 서울에서 자란 사람일까. 자라기는 타 지역에서 자랐으나 평생을 서울에서 산 60대 이상의 사람은 서울사람일까, 고향의 정의는 뭘까.
고향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어학사전에 고향이란 다음과 같은 뜻을 가졌다. 첫째,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둘째,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셋째,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란 의미가 있었다.
남편에게 고향은 1번의 의미로는 천안, 2번의 의미로는 잘 모르겠다. 시아버지는 부산, 시어머니는 평양이라 했던가? 조상이 자기 부모를 말하는 건지 그 이전을 말하는 건지 헷갈린다. 3번의 의미가 고향이라면 남편의 고향은 서울이 될 수 있겠다. 남편은 대학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황금기였다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 대학생활을 한 서울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면 남편의 고향은 서울이 될 수 있겠다. 생각보다 고향은 범위가 넓었다.
나에게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인천과 수원이다. 인천에서 태어났으나 기억나는 유년시절부터는 수원에서 살았다. 조상이 대대로 살아온 곳은 경상북도 김천 또는 서울이다. 엄마 아빠는 출생지와 자란 곳이 같다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은 수원이다. 어린 시절 살았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기억이 많이 나는 수원이다.
편협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사고는 자유롭고 유연했다. 오히려 판에 박힌 건 나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생각해 보면 요즘은 나도 수원보다 내가 사는 성남시 분당구가 더 정든 곳이 되어 간다. 남편과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낳고 14년 동안 살았고 앞으로도 살 곳.
나에게 서울이 그립고 정든 곳이 아닌 이유는 매일 서서 출퇴근을 하며 장시간 지옥철과 지옥광역버스를 경험했기 때문일 거다. 서울 하면 뭔가 고난이 연상된다. 특히 만원 버스에 끼여 한 시간 넘게 서서 가며 여러 번 하늘이 노래졌던 기억. 그 당시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하셨다면 나도 덜 고생했을 테고 부동산 수익도 상당하셨을 텐데. 부모님은 여전히 수원에 거주하신다.
힘들게 통학하고 출퇴근을 하지 않고 자취를 한 남편에게 서울은 즐겁고 신나는 곳이었을 거다. 이동을 위해 하루 세네 시간을 길에서 보내지 않아도 됐을 남편. 차라리 집이 먼 게 약이 됐다.
아이들을 위해서 이제라도 서울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향을 생각하다 보니 서울 부동산을 사거나 역세권에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힘든 통학, 출퇴근길을 겪으며 나처럼 서울이 싫어지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