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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Oct 12. 2024

더 행복해질 너에게

삶의 고난마저 도움이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교복을 입고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한 중학교 생활. 큰 키에 커다란 뿔테안경을 쓴 수민이. 그녀에게 내가 말을 걸었고 그 뒤로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그녀는 거의 매일 지각을 하거나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하는 아이였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아이였지만 눈이 나빠 두꺼운 뿔테안경을 썼고 치아도 교정 중이라 외모가 티브이에 나오는 못생긴 주인공 친구 같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자주하셨고 아버지는 다소 폭력적인 성향이셨다. 그런 내용을 쓴 일기장을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읽으라고 했고 수민이가 그 일기를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은 개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잘 풀어쓴 일기라고 칭찬했지만 그런 내용을 친구들 앞에서 읽은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린 진학하는 고등학교가 달랐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몇 달 뒤 수민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수민이는 학교생활이 외롭다고 했다. 그녀의 성격에 마음 맞는 친구 찾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수민이는 종종 편지를 보내왔지만 바쁜 생활에 답장 보내는 걸 잊었고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다.


다시 수민이를 만난 건 수능이 끝난 겨울 우연히 역 앞에서 마주쳤다. 수능 잘 봤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점심에 김밥을 많이 먹고 너무 졸려서 3교시를 망쳤다고 우울해했다.


시험을 망쳐도 재수는 없다는 아빠의 말에 그녀는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수민이 아빠는 그녀에게 오티와 엠티를 다 금지했고. 통금도 밤 9시라고 했다. 가뜩이나 내향적인 그녀의 대학 생활은 홀로인 시간이 많았다.


수민이는 전과도 하고 복수 전공도 하면서 나름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경영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하며 마케팅 디렉터를 꿈꾸는 그녀는 활기차 보였다.대학을 졸업하고 그녀는 원하는 회사 마케팅 부서에 취업을 했다. 취업하고 이 년 정도는 회사 생활이 쉽지 않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잘 버텨서 회사에서 우수 사원상도 받았다.


몇 년 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소개해 줬는데 그녀와 안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그의 이상형은 세련된 도시 여자라는데 내 친구 수민이는 생긴 것부터 세련된 과는 거리가 멀었고 꾸미는데도 서툴렀다. 둘의 교제를 말리고 싶었지만 수민이가 그 남자를 많이 좋아하는듯했다.


수민이는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이 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돌이 될 무렵 수민이는 직장에 복직했다. 아이돌보미 이모의 아이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연속됐다. 돌 기념 양가 부모님을 모신 자리에서 시부모님은 수민이가 직장을 그만두고 애를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복직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수민이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수민이는 다니던 직장을 좋아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고 일하는 걸 즐거워하던 그녀지만 본인 즐겁자고 아이 불행에 눈 감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6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민이는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어렵게 이룩한 것이 없어지는 기분이라고. 그 회사는 몇 년 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 회사 뉴스를 접하면 그녀가 생각난다.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던 그녀에겐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녀는 사회와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남편과도 자주 다퉜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직장도 잃고 삶이 정말 바뀌었는데. 남편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불공평하다고 느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자 취업학원에 등록하여 공부한 후 시간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급여도 대우도 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는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일 년 뒤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려해 줘서 일 년의 육아휴직을 주는 등 지원해 주지만 복직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그녀는 두 번째 실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집에서 아이를 키운 지 3년. 그녀는 아직도 살림과 육아는 어렵다며 부끄럽게 미소 짓는다. 이제 나이도 있어 다시 취업하긴 어렵다고. 무슨 알바라도 있으면 하고 싶은데 나 같은 일머리 없는 사람을 누가 뽑아주겠냐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묻는 눈빛이 떨린다.


삶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고난들도 어쩌면 그녀의 삶을 만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그 고난이 사실은 도움은 아니었을까. 그녀가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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