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물려죽은 삼색냥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1)

by 이명주


“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해(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2016년 즈음 부산 영주동에 살 때다. 계단이 많은 산동네였고 집 근처에 바다와 산,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민주공원'이 있었다. 저녁 기운이 감돌지만 아직은 밝은 오후, 그날도 낮 동안의 피로와 적적함을 덜려 산책에 나섰다. 30분쯤 집에서 머뭇거린 후였다.


공원으로 이어진 지그재그 계단을 천천히 올라 마지막 하나를 밟는데, 어디선가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개가 장난감을 물고 그르렁대는 소리 같았는데 유심히 들어보니 그보다는 무언가 고통에 흐느끼는 짐승 소리 같았다. 순식간에 불길한 장면들이 머릿속를 채웠다.


서둘러 소리의 진원지를 찾은지 얼마지 않아 그 실체를 목격했다. '얼어붙는다'는 표현이 적절한 순간이었다. 공원 한가운데 웬 남자가 자신의 반려견을 향해 "그래! 물어!" 하며 응원하듯 소리를 치고 있었고, 한껏 흥분한 개는 제 머리통 만한 작은 삼색 고양이(이하 삼색냥) 한 마리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가엾은 삼색냥은 꼼짝없이 개의 이빨에 물려 도리질을 당하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길 반복했다. 녀석은 이미 도망가거나 더 크게 울 힘은 없는 듯 개의 입에서 풀려놔도 축 쳐져 누워만 있었다. 그리곤 다시 이어지는 극한의 고통에 신음했다. 성대가 아닌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이었다.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인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며 고함을 쳤다. "뭐하는 거에요! 고양이도 생명인데! 개를 키우면서!" (대충 이런 말들을 한 것 같지만 너무 흥분한 탓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남자는 뜻밖에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아니 그게……" 뭐 어쩌고 하는 짧은 변명을 하다 자리를 떠났다.


드디어 잔혹한 놀이에서 풀려난 삼색냥은 그러려고 그랬다기보다 마침 고개를 떨군 곳이 내 발등이었고, 새로운 낯선 인간을 보고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 그대로 누워 있었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면서. 그때까지 얼어있던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근처 화장실에서 물을 떠와 녀석에게 먹여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으로 데려갈까, 병원으로 가야 할까 짧은 고심 끝에 치료가 먼저란 판단을 했고 119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119 측은 진지하게 신고 내용을 접수한 뒤 곧 현장에 와줬다. 하지만 '고양이 응급환자'를 다루는 덴 영 익숙지 않은 듯 삼색냥에 목줄을 걸어 차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시금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우왕좌왕 몇 분의 시간을 더 지체한 뒤 마침내 근처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IMG_20160407_195304.jpg 30분만 빨랐다면...... 아님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말려주었다면......


'삼색아, 아프지...... 조금만, 조금만 힘내...... 곧 괜찮아질 거야. 힘내, 힘내야 해......'


병원이 있는 백화점 건물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앞서 자그맣게 부풀었다 꺼졌다 하며 생명의 신호를 보내던 삼색냥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안 돼, 아닐 거야.' 차가 멈추고 상자를 꼭 안고 119대원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마침내 하얀 가운을 입은, 찰나지만 안도감을 주는 인자한 표정의 늙은 의사를 만났다. 하지만 그의 첫 말은 "이미 숨이 멈춘 것 같은데......"였다. 뭐든 응급조치를 해봐달라 간청했지만 삼색냥을 데리고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나온 의사는 녀석의 호흡이 완전히 멈췄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


작은 몸은 여전히 따뜻하고 말랑했지만 모든 게 끝났다. 또 한 번 얼어붙는 느낌. 감전된 듯도, 텅 빈 것 같기도. 119 대원들도 뭐라 말을 건네지 못하고 안타깝게만 바라봤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공원 근처에는 사시사철 살뜰히 길고양이들의 밥과 집을 챙기는 이웃도 여럿인데, 하필이면......


잠든 듯 보이는 삼색냥의 주검을 안고 집으로 왔다. 몇 시간 전 산책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리라곤, 실낱 만큼의 불길함도 느끼지 못했는데. 삼색냥도 그랬겠지. 같이 사는 고양이들이 여느 때와 같은 천진하고 태평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서야 현실감이 되살아났다.


'집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30분만 일찍 나왔더라면. 119를 부르지 않고 곧바로 녀석을 내 집에 데려와 쉬게 해줬다면. 행여 녀석을 도우려 한 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공포와 고통을 더한 건 아닐까? ......'


유독 맑고 향기로운 봄밤, 잔인하게도 가장 처참한 마지막 순간만을 함께 하고 영영 이별하고만 삼색냥에게 자꾸 미안해졌다. 그리고 뜨거운 분노도. 자신의 개로 하여금 삼색냥을 물어 죽이게끔 한 아둔한 남자는 물론 분명 한 생명의 처절한 고통을 듣고 보면서도 수수방관했던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삼색냥의 마지막 잠자리는 하늘이 잘 보이는 발코니에 마련해주었다. 다음 날 새벽, 행여나 다시 깨어 있지 않을까 했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어제의 그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누구도 부러 들어와 해코지 못할, 하지만 바람이 잘 통하고 해와 달, 별 그리고 친구들이 오갈 수 있을 만한 자리에 죽은 삼색냥을 뉘어주었다.


IMG_20160408_074151.jpg 부디 아픈 기억 다 잊고 다시 눈 뜨는 세상에선 행복하게만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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