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life story
작년 이맘때 나는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야 해서 출근이 싫었다. 또다시 출근할 날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퇴근도 싫었다. 월요병 따위 전혀 없이 수십 년간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해오던 차였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가 ‘폭망’한 순간 월요병이 발병했다.
월요병이 이다지도 힘든 건지 난생 처음 알았다. 그런 데다 발병과 동시에 ‘모든 평일의 월요일화’라는 합병증까지 왔다.
그 사람은 나의 직장상사였다. 내가 일하는 작은 사무실에, 어느 이른 봄날, 그 사람이 부임했다. 별정직 대표였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별정직 대표와 직원 네 명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월간잡지사였다. 별정직 대표는 정규직원들과 달리 위원회에서 임명하는 방식이었고 임기가 정해져있었다. 그 사람은 2018년 봄, 별정직 대표로 임기를 시작했다. 이제부터 그 사람을 A로 약칭하기로 한다. 그리고 (TMI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A의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이다. *TMI(too much information)
A는 나를 “일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직원”으로 지목했다. 최대한 자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으라는 지시도 했다. 직원회의 때 의견을 내면 “하라면 하지, 뭔 말이 많은가!”라며 내 말을 끊었다. 나와 대화하고 있으면 자기가 윤리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화를 벌컥 내기도 했다.
(내 생각에) A가 나를 공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내가 ‘A의 허락 없이’ 외부 일을 맡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월권’이라는 단어를 백만 번쯤 들은 것 같다. 나는 업무시간 외에 자유시간을 활용해 그 일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A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일을 놓쳐버렸고, A는 그나마 있었던 우호적 반응을 내던져버렸다.
곧바로 편집업무 외에 다른 업무가 내게 배정됐다. 구조조정상 필요한 업무부과라고 A는 말했다. 외부의 일을 맡으려 했던 나의 열정(?)과 능력이 내부의 업무를 감당하는 데 쓰여야만 한다고 A는 생각했던 듯싶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업무에 투입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직 쪽이 아니라 업무감당 쪽으로 결정을 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야지 결심한 때는, A가 주먹으로 내리쳐 책상유리를 박살낸 날이었다. 유리 파편이 내 얼굴과 가슴팍까지 튀었다. 그날 나는 사직서를 썼다. ‘사직서’라 쓰고 ‘부당해고 진술서’라 읽는 그 문서.
퇴사할 무렵, 그리고 퇴사하고 나서 한참 동안 A를 떠올리지 않고 지냈다. A나 나나 고만고만한 인간들이 부딪힌 거고, A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직장상사인 까닭에 내가 퇴사한 거다, 대충 그리 정리하고 넘어갔다. A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업무 스타일이 나와 달라 갈등이 생겼고, 그 결과로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간혹 ‘더 참을걸’하는 후회의 감정이 올라왔지만, 그 감정과 A를 연결하려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나의 인내력 부족에만 원인을 돌렸다. 내 인생사에서 A를 별로 중요한 인물로 쳐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쾌적한 일만 생각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 굳이 A를 떠올리며 불쾌감을 곱씹을 것까지는 없겠다 싶었다. 나를 갑질 피해자로 개념정의하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남은 인생 동안 A를 만날 가능성은 내가 보기에 전무했다. 취향도 다르고 식성도 달라서, 앞으로 문화공간이나 식당 같은 데서 마주칠 ‘위험’은 거의 0%에 가까웠다.
그렇게 A를 일부러 잊고 지내다, 며칠 전 기억을 되살려보게 됐다. 그럴 만한 일이 생겼다. 내가 퇴사한 (A는 아직 재직중인) 그곳에서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요며칠 부탁받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새삼스레 기억을 되살려보니, A가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별정직으로 낯선 업무공간에 중도진입한 사람은 대개 임기 초반에 좀 어리바리하게 마련인데, A는 그러지 않았다. 오래 다닌 직원이 해당업무에 관하여 하나를 알려주면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꿰뚫는 타입이었다. 굉장히 빨리 일을 익히는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눈치도 빨랐다.
내가 A보다 잘하는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말을 잘한다는 거였다. 화내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조근조근 앞뒤 따져가며 말하는 것 하나만큼은, 내가 (자타공인) 잘한다.
이런 방식으로 1년 만에 A를 떠올리던 중에 갑자기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게 면죄권 같은 게 있어서 용서를 베풀자는 게 아니었다. 그저 A의 모든 행위가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A의 성격상 그런 때에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고 이해하자는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아닌 게 아니라 말이 신속하게 나오지 않는 사람일수록,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힘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작년 이맘때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닐 수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직장 내 폭언&폭력으로 조언해줬던 변호사님 두 분도 주저없이 내 편에 서주었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공적인 관계로 얽힌 사람들 사이의 용서는 이런 식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상대와 내가 주고받은 행위에 대하여 ‘돌이킬 수 없습니다’ 깨끗이 인정하고, 상대를 향해 ‘그럴 수 있었겠어요’ 이해하는 것 말이다. 객관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타인의 성격을 추론하고, 충돌상황에 당사자 아닌 제3자로 개입하여 상황을 파악하기. 이런 류의 용서는, 말하자면 정치적 용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 아니다. 여성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가 한 말이다.
정치적 용서는 죄 용서나, 가해행위가 명백한 가해자 용서와는 다른 차원의 용서다. 죄 지은 사람이 딱히 없고, 가해·피해 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대방에 대한 용서인 까닭이다.
흔히 용서는 종교나 윤리·도덕 분야의 사안으로 이해된다. 용서를 감행하는 사람에겐 순수한 신앙, 고매한 양심 같은 게 뒷받침돼야 한다고 상상한다. 그러면, 특정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나는 성인도 아니고, 보통사람에 불과하니까’ 하는 식으로 저절로 합리화가 된다.
그러나 나는 요며칠 순수한 신앙인이나 고매한 양심자를 자처하지 않으면서, 흉내내지도 않으면서, 용서를 실천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 용서도 쉬운 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못하겠다 지레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해보니까 알겠는데, 이런 용서는 누구나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용서다. 충돌 당시 저 사람과 내가 주고받은 지나간 행위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저 사람 (다혈질의, 얌체 같은, 기타등등···) 성품이라면 그렇게 반응할 수 있지’하고 이해하는 것이니까.
부처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되라는 것도 아니니까 가볍게(으응?) 도전은 해볼 수 있단 말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