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다공모전”
벌써 1년 전 일이다. 지난해 6월 마지막 날, 나는 그 사람과의 날선 갈등, 격한 대립을 끝냈다. 갈등과 대립이 끝남과 동시, 나와 그 사람의 관계도 끝났다. 나는 관계에서 실패했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는 우리 관계가 잘못될세라, 실패할세라 몹시 두려웠다. 그래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관계를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당황스러웠다.
그 사람과 나는 같은 일터에서 근무했다. 우리 관계를, 그 사람은 자신을 위에 두는 상하관계로 보았고, 나는 둘이 동등하게 마주하는 협력관계로 보았다. 무슨 회사가 직원들 사이에 그런 이중적 관계를 허용하느냐 궁금하겠지만, 그게 충분히 가능한 회사구조였다.
우리 두 사람이 몸담고 있었던 일터는, 후원·기부·찬조로 운영되는 NGO단체 중 하나였다. 우리의 일터는 두 사람에게 각각 별도업무를 부과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의 업무관계를 바라보는 주위사람들의 의견도 대체로 둘로 갈리는 분위기였다. 형식적 직제상으로 보면 그 사람이 나의 상사였고, 실제적 근무연한으로 보면 내가 10년을 훨씬 웃도는 경력자였다.
갈등의 와중에 내가 두려워했던 관계실패의 의미는 ‘협력의 종식’을 뜻했다. 그리하여 나는 협력의 종식을 막는 방향으로 온 힘을 집중했다. 있는 힘, 없는 힘 그러모아 쏟아부었다. 심리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까지 받아가며, 애쓰고 또 힘쓰며, 나는 말 그대로 ‘노오력’을 기울였다. 협력의 종식=관계실패, 그것이 무척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맘속에 똬리 틀 때에는, 그게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두려움이 한 번 들어서고 나면 마음은 갑자기 무거워지고 나날이 어두워진다. 용기를 내어 무겁고 어두운 그 속을 들여다보려 맘먹지만, 그 순간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인다. 막막하게 두렵고 막연하게 두려운데, 그 두려움 속을 들여다보고 헤집으며 그것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상처 위에 소금 뿌리는 격이랄까.
그런데 독서와 명상과 성찰과 상담 등 활용가능한 방법들을 총동원해 두려움의 정체를 얼마쯤이라도 파악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진다. ‘유레카’나 ‘의기양양’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를 두려워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심리적으로 약간은 정돈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파국으로 흘러갈 무렵, 나는 어서 그 심리적 정돈단계에 이르기를 원했다. 해서 좀 서두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들을 이것저것 시도했다. 친구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관련도서도 찾아보고, 심리상담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관계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그런데 결과는···, 나는 관계에서 실패했다. 나의 두려움이 콕 집어 현실화되었다. 관계실패를 깨달은 즉시 나는 퇴사했다. 현실화된 두려움을 도무지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나는 협력관계 말고 다른 가능한 관계방식, 콕 집어 말하자면 ‘상하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아주 뒤늦게, 그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헤아려본다. 나와 ‘같은 것’을 두려워했을까? 아니면, 혹시, 그 사람은···, 협력관계 아닌 다른 관계(이를테면, 상하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나의 혼신의 노력 자체를 두려워한 건 아니었을까?
기억컨대, 내가 관계정상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관계는 더 어려워졌다. 내가 관계실패를 피하고자 힘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관계는 더욱더 꼬여갔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전연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의 노력이 자기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은 내 두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겨냥했다. 내 두려움을 해체하여, 내 두려움을 없애야겠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나는 절실하게 내 두려움을 다루었다. 그러느라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헤아릴 새가 없었다. 그 사람의 두려움은, 미안하지만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었다. 내겐 내 두려움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했다.
가만가만 따져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자신의 두려움을 우선한다. 두려움은 밀도와 심도 면에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남의 두려움을 우선하려야 우선할 수도 없고, 소중히 다루려 해도 그러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관계실패, 그것도 협력관계의 실패’를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관계를 소중히 다루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단 말이다. 그러니, 적어도 나는, 관계의 파트너였던 그 사람의 두려움을 우선할 것까지는 없다손치더라도 최소한 ‘고려’는 했었어야 옳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따져보면 그 사람과 나는 아주 다른 유형의 인간이다. 그 사람은 추론에 능하고 시스템에 강했다. 그 사람은 주어진 사실적 정보들을 두루 조합하면서 업무과제를 파악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구조를 잡아, 목표를 추리·추산하는 업무방식을 갖고 있었다.
반면 나는 직관에 능하고 디테일에 강했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해 목표를 설정하길 좋아했다. 그렇게 설정한 목표를 동료들에게 보이며 내가 구상한 재미있는 디테일을 발표하곤 했다. 내가 그 방법으로 업무과제를 설명할라치면 나는 언제나 들뜨고 즐겁고 신났지만, 그 사람은 ‘뭔 소리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적이 많았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중년의 싱글여성,’ 이 하나뿐일지 모른다. 이다지도 다른 두 사람이 협력관계를 형성하려 한다면, 극도로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때 우리 둘 다 그러지 못했기에 우리는 실패했다.
그 사람과 나의 협력관계가 실패한 지금, 나에게 내가 묻는다. 그때 나는 도대체 어떤 실패를 두려워한 것일까?
나는 관계가 실패할세라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서 관계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관계였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름지기 나와 남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인데, 나는 내가 원하는 관계가 성취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나의 ‘자기중심성’이 관철되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거다.
자기중심성 관철 대(vs.) 협력관계 유지
사건종결(으응?) 1년 만에 나는 나의 모순됨을 알았다. 너무 ‘뒤늦게’여서 아쉽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게 어디냐’ 싶어 감사하다. 실은, 나이 오십 넘어서도 새로운 앎이 생길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어, 기쁘다. 혹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공자님 말씀이 이런 (역설적, 반성적 의미의) 감사와 기쁨까지도 표현한 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