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면담 정면 승부하기

일터에서..

by 서주연

주사위는 던져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벗어나,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초등 입학생과 전학생. 더욱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시기다.

거기에 1학년 5학년 반대표 엄마까지. 너무 많은 것을 저질러버렸다.




이렇게 저지른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직장에서의 역할은 올해 별다른 기대가 없었고, 나의 커리어와 크게 상관이 없는 업무에 부서장이 나를 배치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부서장이 원래부터 부정적이었다. 부서장의 확고한 생각은 내가 바꿀 수 없을뿐더러, 시간이 갈수록 압박이 가중되었다. 더욱이, 남편이 얼마 전 이직해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래서 마음을 정하기로 했다.

올해는 직장에서의 나보다, 엄마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기로..



면담 정면 승부하기

이왕 이렇게 마음먹은 거, 부서장에게 개인 면담을 신청했다. 두둥~


나는 비장했다. 확실하게 말을 잘해야 했다. 어물쩡하게 말하다가는 그분의 페이스에 말릴 것이 불 보다 뻔했다. 면담을 신청할 배짱이면, 강하게 말하리라 다짐했다. 메신저를 열어 그분께 말을 걸었다.


"혹시 잠깐 면담 가능하세요?!"

"네"


짧고 간략한 답이 돌아왔다.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회의실로 발을 옮겼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머리가 잠깐 '핑'돌았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현재 내가 놓인 상황을 잘 설명드리려고 했다. 그리고 같은 표현이라도 조금 센 단어들을 선택해서 말씀드렸다. 내가 놓인 상황이 마일드하게 들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둘째가 팬데믹 이후로 유치원과 학교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말씀드렸다. 아이들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사실이기도 했지만, 가볍게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선 상담 치료와 다른 방법들이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을 어렵게 털어놓았다. 혹시나 가볍게 들리도록 이야기한다면 힘들게 꺼낸 이 면담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 하게, 공감 능력이 한참 부족하신 분이 의외로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셨다. 아마 부서장 교육을 얼마 전에 다녀온 탓이리라.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지,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겪었던 자녀들의 경험담도 늘어놓으셨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는 요지였다. 이게 웬일인가. 예상 밖의 이야기 흐름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 회사에서 진행 중인 순환 재택을...

저는 매주 화, 목으로 정해서 재택근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케어를 위해서요."


...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게 가능한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관련해서 절차가 있는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직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신규 보장직이 신데, 면담 스킬을 많이 교육받고 계신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정답지 같은 면담이 이어졌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회의실을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한데?!'


그다음에 뭐가 올지 모르고.. 나는 안도를 했다.


사실 회사는 재택근무를 격주로 하고 있는 상태였다. 쉽게 말하면 50%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격주가 아니라 매주 화, 목을 고정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하니 나름 룰을 깨는 편에 속하는 것이고, 예외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큰 틀에서는 50% 아래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니 크게 규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직장과 합의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부서는 재택근무를 보직장이 워낙 싫어해서 눈치상 다들 회사를 나오는 분위기였던 것이라, 내가 면담을 하게 된 실제 이유였다. 그분의 룰을 어기는 것이므로. 우선은 내가 원하는 것이 받아들여져서 면담의 결과는 만족이다.




그리곤 머지않아, 부서장의 호출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른 업무를 더 맡아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 일이 나에게 맞아 보인다는 것이란다. 부서의 행사와 사람을 챙기는 업무였다.

역시나...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사실 손 많이 가고 일한 티는 안나는, 사람들이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업무였다. 면담 직후에, 이런 업무를 맡으니.. 나는 약점이 잡힌 듯했다. 타이밍적으로는 내가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아보겠다고 말을 할 수 밖에는.

이제 시작된 건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찌 잘 넘어가는 것 같더라니.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