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키즈폰을 가지게 되는 것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우며, 아직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번호를 친구들 몇 명이서 교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과 후에는 정해진 스케줄들이 각자 있어, 근처 놀이터나 학교에서 남아서 노는 경우는 잘 없다. 대신에 엄마들끼리 연락해서 만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대부분이 그렇다. 학교 참관 수업 때 나와 결이 비슷해 보이는 엄마들이 누가 있는지 둘러보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잠깐 봐서는 알기 어려웠기에 일단 부딪혀야 한다.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엄마들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약속하기 위해 반 카톡을 활용하거나 한다.
우리 반 단톡방에도 어린이날에 같이 영화 보러 갈 사람 있냐고 물어보았고, 거기에 나는 공개적으로 답하지는 않았다.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시댁 다녀오는 것 말고는 스케줄이 괜찮을 것 같아서 개인 톡을 했고, 둘째는 반 친구와 첫 영화를 보러 가는 약속이 생겼다. 원하는 시간대로 상의해서 우리는 예매를 했다. 그분은 교직원 할인을 나는 통신사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날짜와 시간으로 톡을 하며 예매했다.
늦지 않게 다행히 도착했다. 어색했지만 자리도 옆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함께 봤다. 나도 사실 처음이었다.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이. 이렇게 노력하면 둘째에게도 친구를 사귈 물꼬가 트일 것 같아서 노력 중이었다. 영화는 적당히 마무리되었고,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영화관 지하에 키즈카페가 있어서 시간을 더 함께 보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도 이렇게 된 김에 아이들끼리 노는 동안 엄마들끼리는 수다를 떨기로 하고 동행했다. 사실 그 집은 아빠와 남동생도 함께 왔는데, 아빠는 남동생을 케어하던가 책을 보던가 하셨다. 낯설지만 친해지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이 오갔고, 이런 성향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집 친구도 우리 둘째만큼이나 숫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엄마가 친구를 더 만들어주고자 이런 자리를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이 눈치가 별로 없는 스타일이라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2-3시간이 흘렀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는 집의 첫째와 남편 저녁이 걱정될 시간이 되었다. 얼핏 보니 2층 식당가에 포장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서 사갈까 하고 있었다. 초면에 같이 식사까지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이렇게 얼굴을 텄으니 서로 의지하면서 학교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가에서 포장을 무엇을 할까 훑어보고 있었는데, 그 집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실 예정이라 했다. 가족 다 같이 외출한 상황이니 충분히 이해 가는 상황이었다. 맛있게 드시라고 말을 나누고 포장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 집 엄마가 쉽게 자리를 뜨지 않고 내가 주문한 가게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어쩐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되겠냐고 입을 뗴셨다.
"어떤...?? 부탁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화요일에 둘째 일로 종합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침에 첫째 등원을 시켜줄 사람이 없어서요.. 혹시 아까 말씀 중에 화요일에 재택 근무하시는 것 같아서, 아침에 저희 아이를 데려다 계신 집으로 데리다 드리면. 혹시 같이 데리고 있다가 학교 좀 같이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
순간.. 나는 화, 목 재택하기도 했고, 부탁이란 것을 받으니.. 순간적으로 되도록이면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몇 시쯤 아이가 저희 집에 올 예정인가요?!"
나는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그분은 남편에게 몇 시가 좋겠냐고 의논하는 부부의 태도를 보게 되었는데, "늦어도 한 7시 30분쯤?"
이렇게 말하시는 남편의 태도가.. 팔짱을 끼고서, 너무 떳떳해 보였다. 맡겨 놓은 사람처럼.
'내가 부탁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탁하는 사람이 저리 당당하게 말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쩔쩔 메고 있지?!'란 생각이 순간 들었다. 입장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집에서 영화관이 가까워서 남편이 데리러 왔다. 집에 가는 동안, 그리고 집에 가서도. 처음 보는 학부모에게 덜컥 학교 등원을 부탁받은 상황이었다. 그것도 우리 집에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나는 그 시간 동안 아이를 깨워서 아침 준비 하는 모습만으로도 바쁜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나 또한 재택근무이지만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집에 도착할 때쯤 되니 더 선명해졌다.
나는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도 없고, 그 집은 여기서 몇 년 살아서 유치원도 이곳에서 졸업했다고 들었다.
'그럼 부탁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던 걸까.'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후에는 돌보미 이모가 집으로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그날만 오전에 부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의 태도로 봤을 때 나는 아침에 집 청소며, 아침밥이며 아이들 챙기기 바쁠 텐데 한 번 만난 친구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나면 더군다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왜 이런 부탁을 받게 되었으며, 그분은 어떻게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가 있나 싶었다.
생각보다 고민은 늦은 시간까지 되었고,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나는 안된다는 말을 톡으로 전해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사실 잘해보고자 만났던 만남이라 생각이 복잡하고 조심스러웠다. 더군다나 학기 초라 더 조심스러웠다. 아이의 교우 관계가 엮여있으므로. 하지만 초면에 이런 부탁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조심스러워서 부탁을 들어드리기 힘들다는 내용을 정성껏 나름 쓰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에 톡으로 답이 오지 않고, 바로 전화가 왔다. 나는 왜인지 받기가 싫었다. 하지만 전화는 여러 번 더 왔고, 나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 울릴 때도 상대방으로부터 조심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거절하는 나에게 전화를 바로 걸어서 말할 정도로 편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부재중 확인이 늦었다고 톡으로 답을 했고, 그분은 그날 아이 봐주기 힘드냐고 여러 번 물었다.
왜 그것을 여러 번 물을까. 내가 너무 에둘러서 말해서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일까. 왜 안 될 것 같은지를 계속 물었고, 안될 것 같은 이유를 말하면, 그럼 좀 더 일찍 맡기면 안 되느냐, 아님 조금만 더 늦게 맡기면 안 되겠느냐 등 집요하게 물어왔다. 이렇게 해서는 안 끝날 것 같아서.
세 글자로 결국
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제야 그 엄마는 그럼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본인 아이 등교하는 것을 나에게 맡겨두기라도 한 것인가?! 아님 내가 이전에 정말 큰 신세를 지기라도 했던 것인가. 이번에 내가 부탁을 승낙을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부탁을 앞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정도였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정말 잘 거절했다는 생각이 드는 들었다. 백번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