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서는 300명으로 꽤 큰 부서 중 하나다. 그중 우리 그룹은 50명 정도. 중소기업에서 이 정도면 회사 전체 직원수와 맞먹을 것이다. 이 부서로 발령받은 지도 3개월이 지났다. 문득 열심히 일하시는 여자 선배 한 분이 눈에 들어온다.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시다.
부서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그분 이름이 여기저기 끼어있었다. 최소 4-5군데에서 이름을 보았다.
'잉?? 한 프로젝트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은데, 여러 곳에 이름을 올리기가 쉬운 일인가?!'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마침 그분은 여러 프로젝트 중에, 내가 속한 곳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셨다. 같이 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일할 수 있는지 심히 궁금했다. 나로선.
아, 그분의 일 하는 스타일은 완전히 소속되어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하게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이나, 주목을 받을 만한 것들을 캐치해 내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다. 시니어이셨기에, 그런 부분을 낚아채서 부서장에게 본인이 직접 보고를 하셨다. 이슈든, 주목받을 일이든. 덕분에 우리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진행하기 어렵고 복잡한 프로젝트로 어느새 소문이 나있었다. 사실 진행하는 실무인 나는 어렵긴 해도 할만했는데.. 이 분야 특성상 많이 어려워 보이시나 보다 생각했다. 전문적인 분야이기도 하고, 안 해보신 분들에게는 생소했을 테니까. 그렇게 3개월이 더 흘렀다.
그분은 타 프로젝트에 현장 투입이 되셔야 해서, 내가 관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아예 빠지셨다. 그리고 참여하시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종종 들리는 바로는, 현장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하기 힘들고 어렵고 이슈가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 듯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돌이켜 보면..
'뭐지?? 그분이 빠지면, 일 손이 줄어서 힘들 줄 알았는데 일이 훨씬 수월한 이 느낌은 뭘까?!'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그분께 이해시키도록 몇 번이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공유하는 보고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질문을 한 번 시작하시면, 그 대답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동료분의 얼굴을 볼 필요나 불평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우리끼리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되니까.
참으로 신기한 경험 중 하나였다. 겉 보기엔 굉장히 열정적이고 능력 있으신 분 같았는데, 그분은 참여하는 프로젝트마다 이슈를 부각하고 복잡하고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화(?) 시켰고, 그것을 본인이 진행하고 있다고 매번 하소연하셨다. 일을 안 하는 분에 비해선 열심히 일을 하시지만, 효율성이나 팀원 입장에서는 같이 일하고 싶은 분 중 한 분일까?!
그중에 한 가지 프로젝트는 결국 내가 PM이 되었다. 여기서 PM은 프로젝트 매니저를 뜻한다. 안타깝게도 그 프로젝트는 진행하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으나 3가지 이상의 부서를 아울러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여러 부서를 같이 조율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사실 나는 그 중간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당 부서에게 그 문제를 리포트하는 다리 역할이 메인이었다. 그 선배님도 나와 함께 같은 회사 메신저방에 함께 계셨다. 중간중간에 보고 할 일이 있으면 그분께 하면 되었지만, 굳이 그분께 따로 설명이나 보고드릴 여력이 없었고 나는 조용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큰 이슈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끼이게 되면 결국 이 프로젝트 또한 이슈투성이의 프로젝트로 그룹장께 보고가 될 것 같았다.
어느덧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는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후반부를 달렸다. 나는 남아있는 대략적인 이슈 굵직한 것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끝이 보이고는 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슈는 아직 해결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갑자기 그 선배분이 채팅창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눈팅만 하시다가, 쌓여있는 메신저들을 확인하셨나 보다. 그리고는 무턱대고 그동안 수고하셨다느니... 맺음말을 하기 시작하셨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는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시고 서로 생색내기의 말들이 오고 갔다.
나는 갑자기 화가 너무 나기 시작했다.
'아직 굵직한 이슈가 아직 남아있는데,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닌데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시면...'
개인 메신저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직 다 끝난 상황이 아니라고.. 그렇게 끝인사를 하실 때가 아니시라고.. 겸연쩍어하시면서 답을 이어가셨다. 그리고는 단체 메신저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고 대충 얼버무리시고는 말을 맺으셨다. 나는 한 번 더 깨달았다. 아, 이 분은 개입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것도 아닌 체로 프로젝트를 이렇게 여러 개를 하시는구나. 차라리 가만히 계셨다면 내가 일 하는 것에 방해는 되지 않으셨을 텐데..
어느 날 지나가다 유튜브에서 ‘설거지 많이 하는 사람이 그릇 꺤다’라는 표현이 나왔다. 무릎을 탁! 하고 쳤다. 딱 그 표현이 맞았다. 설거지를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설거지를 많이 하시는 분. 그중에 그릇을 깨고 이슈를 만드는 이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그분은 그런 방법으로 본인의 존재감을 부서에 알리고 있었으며, 그에 걸맞게 여러 프로젝트를 신경 쓰시느라 사라지지 않는 미간의 주름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