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할 수 있겠지?!
2월 초이지만 아직 추위가 매섭다. 8시가 넘은 저녁 시간 퇴근을 하는 길이지만, 아이들을 데리러 시댁으로, 육아 출근하러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시댁으로 퇴근하는 길은 지하철 역에서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다시 육아 출근이 싫어서인가... 그건 안 비밀. 시댁으로 향하는 길 언덕은 유난히 높고 오르기에 힘들게만 느껴진다. 꾸역꾸역 올라가 대문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 소리에, "엄마다!" 소리가 대문 밖으로 들리지만 오늘은 조용하기만 하다.
중문을 열면 아이들이 튀어나와서 서로 안기려고 하는데, 오늘은 어째 아무도 튀어나와 반기질 않고, 소파에는 영혼이 반쯤 나간 얼굴을 하신 어머님만 앉아계신다. 그 얼굴은 한 달에 한 번 나올 법한, 육아에 지쳐 영혼이 탈곡되었을 때 나오는 얼굴이시다. '오늘도 그날이신가 보다'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 녀석들이 또 얼마나 말썽을 부렸나?', '언제까지 이렇게 무한 반복될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무한루프를 돌고 있다. 어머님의 그 얼굴을 뵐 때마다 정말 면목이 없다. 워킹맘이란 이유로 맞벌이라는 이유로 아이 육아를 맡긴 나는 항상 죄인 같은 마음이다.
"엄마! 오늘 우리 가족 회의해요!"라고 둘째 꼬마 녀석이 방에서 늦게 튀어나와 속 없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응?! 회의?" 내가 생각한 그 상황이다. 시부모님 두 분이 아이를 봐주신 지 어느덧 시간이 오래되어, 큰 말썽을 부린 날에는 다 같이 모여 회의를 하곤 했다. 그 원인을 보나 마나 제공한 둘째 녀석은 속도 없이 본인이 와서 가족회의를 하잔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줄 알고. "아... 회의.. 그렇구나..." 조용히 혼자 속삭였다. 아직 아범이 퇴근하기 전이라, 나는 아범이 올 때까지 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애써 모르는 척하며 속 없는 이야기만 시부모님께 건넸다. 머쓱하기도 하고, 무거운 공기가 싫어서 더 그렇게 말을 하곤 한다. 2년 같은 20분이 지나고, 드디어 아범이 퇴근을 했다. 밥 먹고 우리 가족회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운만 띄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얼른 밥을 간단하게 차린다. 식사는 어쨌든 해야 하니까. 아범의 식사가 끝나가고, 밤에는 잘 먹지 않는 차와 과일을 준비한다. 차와 과일이 차려졌고, 가족회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아주 어렵게 운을 띄운다.
평소에는 눈치도 없는 아범도, 오늘 무거운 집안 분위기는 용케 알아차렸나 보다. 특히 어머님의 육아에 지쳐 영혼이 나간 얼굴은 아범도 벌써 몇 번째 마주한 경험이 있다. 본인이 이직을 하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어머님이 힘들어 보이 신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새 회사로 이직하고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나 보다 먼저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부터 어머님의 그런 얼굴을 직접 마주하게 된 아범이다. 당신의 힘든 어머니 표정은 아들인 본인도 가슴이 아플 것이다. 우리들의 자식들 봐주시느라 늙어가고 힘들어하시는 부모님 얼굴을 마주하면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 역정을 좀처럼 잘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런 날에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할머니랑 지낼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몇 번이고 놨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렵게 말을 꺼낸다. "이제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데요, 아이들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 아버님." 나의 이런 질문에도 아무도 말씀이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글쎄... 나는 애들 더 보면 볼 수 있는데, 애들이랑 너네 아버지랑 섞여서 속 시끄럽게 하니까.. 에휴"라며 어머님이 말씀을 꺼내신다. 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교통정리를 하려고 아버님이 나서셨다가 3명이서 섞여서 소리를 지르고 해결도 되지 않는 상황이 어머님은 너무 힘들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 얼굴이 되시나 보다. "당신이 이야기 좀 해봐요." 라며 어머님이 아버님께 총알을 돌리신다. "......" 아버님은 겸연쩍어하시면서 말씀이 없으시다. 아버님의 침묵에는 더 이상 자신이 없으시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아이들이 머리는 점 점 더 굵어지고, 떼부림이 심해지는 둘 째는 더 감당이 안 되시리라. 육아를 더 도와주시려면 말씀을 하셨을 텐데, 평소에도 싫은 소리를 잘 표현 못 하시는 성격을 나도 아는 터라 어떤 메시지인지 짐작이 갔다. 더 이상 손녀들을 못 봐주시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시겠나. 나 같아도 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럼 둘째 초등학교 입학은 저희 이사 가서 하도록 할게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라고 또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아범 성격도 시부모님 영향을 받아 어려운 이야기를 잘 못 하는 성격이다. 우리는 부동산 상승장 마지막 끝자락에서 나온 실거주 요건 때문에, 주말에는 3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실거주 요건을 맞추려고 이미 주소지 이동을 모두 해두었던 터라, 오히려 시댁 주소로 이번에 아이를 거주지 옮겨 등록을 해야 학교를 이곳을 배정받는 상황이었다. 마침 내일 아침 출근길에 동사무소를 들러 거주지 이동을 하려고, 집에서 도장까지 챙겨 왔던 터에 이런 회의를 하게 되었다. "잘 되었어요 어머님, 오늘 아이 거주지 이동하려고 했던 차인데, 그럼 안 해도 되겠네요.", "그동안 아이들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님의 눈시울이 빨갛게 차오르고 있었다.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하시단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아이들의 싸움과 당신들의 컨트롤이 더 이상 되지 않아 혹여 버르장머리 없이 클까 봐 걱정도 많이 되시나 보다. 안 그래도 언제쯤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차였고, 머릿속으로는 이맘때쯤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럴만한 사건이 없었던 차였다. 크진 않지만 시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육아를 하시면서 우리에게 비용을 받고 계셔서 서로 상부상조의 굴레였기에 여기까지 온 듯하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말은 뱉었고, 침묵과 눈물로 합의는 이루어졌다. '아.. 난 이제 어떡하지' 머리가 하얘지고 멍해졌다. 아이들의 말소리가 점점 작게 들리고 시야는 뿌옇게 보이며 줌 아웃이 되는 느낌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우리 잘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