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이사 편

by 서주연

우리는 그렇게, 시부모님의 도움에서 벗어나 오롯이 우리끼리 살게 됐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육아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백 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오다 한 순간에 도움 없이 살아가는 것은 큰 변화이긴 하다. 우리가 맞아야 할 큰 변화. 주먹을 불끈 쥐다가 어느새 손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시댁과 그동안 좀 특이한 형태로 같이 살았다. 우리는 부동산 정책으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2년 동안 살았다. 주말에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주중에는 시댁 2층에서 두 집 살림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금요일은 세컨드 하우스로 출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거운 빨래들과 함께.. 시댁 2층은 협소해서 우리의 살림살이가 들어갈 자리가 부족해서, 대부분의 짐은 아파트에 옮겨둔 터였다. 매트리스와 이불, TV, 피아노, 책 몇 권들 그리고 주방용품 조금만 시댁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시댁의 짐을 이제 아파트로 옮기고, 우리는 시댁과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작은 짐들은 대부분 우리 차에 싣고 피아노와 침대 매트리스만 용달을 불러 이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작은 짐을 옮기는 이사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내 자취방 이사하던 것처럼. 우리의 이사는 드라마틱하게 3월 1일에 하기로 했다. 휴일이기도 하고, 그전까지는 출근을 해야 해서 어차피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봐주셨기 때문이다. 3월부터는 내가 재택근무를 따로 신청한 상태여서, 당장 이사 다음날부터 둘째는 입학과 첫째는 전학을 하는 엄청난 스케줄이다.


이삿날이 다가왔다.

포장 이사가 아니고 용달 이사이기에, 기사님이 짐만 아파트에 올려놓고 가셨다. 우린 차에서 꺼낸 이불 꾸러미들과 주중에 입던 옷 무덤들을.. 거실에는 발 디딜 곳이 없이 옮겨놓았다. 생각보다 이불과 옷 짐이 너무 많아 거실을 꽉꽉 메우고 말았다. 주말에 어차피 사용하던 이불이 있던 터라 모두 빨래를 해서 어디론가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치울 수 없는 상태란 뜻. 발 디딜 곳이 없었기에 무조건 이불빨래를 돌려야만 했다. 건조기를 사용하지만 이불 빨래는 다시 거실에 널어야 제대로 말릴 수 있었다. 오 마이갓. 이불 빨래를 널게 되니, 허리를 숙여서 지나다녀야 했다. 그야말로 이불 빨래 지옥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이불 빨래 뭉치가 하나씩 사라져 갔다. 발 디딜 틈이 조금씩 생겼다.


이사 후, 첫 등교 길

이사 다음날은, 둘째 아이 입학 후 첫 등교일이었다. 물론 첫째는 전학 후 첫 등교일이다. 어수선한 집에 비해 마음만은 비장했다. '우리 아이들 잘할 수 있겠지?' 불안 반 믿음 반으로 아이들을 바려다 주었다. 그나마 언니와 함께 등교를 하니 마음이 놓이는 듯했지만 첫째는 첫째대로 마음이 안 놓였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무슨 걱정 인형을 끌어안고 한 일주일을 보낸 것 같다. 하나하나가 다 걱정이었다. 해당 주에는 출근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헐레벌떡 회사에 뛰어갔던 것 밖에는.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화. 목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 요일에는 아이들 옆에 있어 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회사 일을 하다가, 빨래 돌리다가, 빨래 정리하다가 보면 아이들이 마칠 시간이었다. 얼른 뛰어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와... 무슨 엄마 아빠들이 이렇게 많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했던 인파들이 앞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등교 첫째 주이다 보니 다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잘 적응은 하는지.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지 염려돼서 나와 있으리라. 화, 목요일은 이렇게 잘 넘겼으나 월, 수, 목이 문제였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해야 했으니까. 둘째가 다행히 돌봄 교실에 배정이 되어 이용할 수 있었으나 너무 늦은 시간에 집에 오는 것은 원치 않았다. 누군가 함께 와줬으면 했는데, 첫째가 속도 깊게 그 역할을 자처했다. 이때를 생각하면 첫째가 너무 대견하고 눈물 나게 고맙다. 초등 5학년이면 동생이랑 한참 다니기 싫을 수 있는 나이인데,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동생을 데리러 가주었다. 코 끝이 찡하게 고맙다.


이렇게 일주일을 무슨 정신으로 출근을 하며, 빨래를 돌리며, 아이들을 케어하며 보냈는지 모르겠다. 정말 다행인 것은 회사 일이 많이 바쁘지 않아서다. 마치 나에게 아이들을 돌보라고 허락해 주는 것만 같았다. 3월 한 달만 이렇게 생활하면 아이들은 내 손이 좀 덜 필요할 수 있을까? 이 생활을 다음 달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