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고에서 내가 배운 것 #02
글, 임은지(35회. 2016년 졸업)
중학교 때 영일고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내 성적에 적당하다 생각했고, 집에서 가까웠고,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영일고로 진학한다 했으며, 친오빠 역시 영일고에 재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평범한 이유들로 진학한 영일고에서 나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평생 경험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했고, 사람을 대하고 나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고, 소중한 인연들을 맺었으며 평생을 함께 할 거라 확신하는 친구도 만났다. 이어지는 글에서 영일고를 다니며 얻을 수 있었던 나의 변화와, 성장의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나는 그들뿐 아니라 진정한 ‘나’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었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고2 즈음의 일상은 꽤나 삭막했다. 7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8시에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고 자습을 하고 12시가 되면 집에 왔고 그다음 날도, 다음다음날도 같은 패턴이었다. 학교는 좋았지만 수능 공부는 지겨웠다. 그즈음에 ‘그림책 읽고 이야기하기’라는 방과후수업을 신청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는 ‘위를 봐요’라는 그림책을 다 같이 읽은 날이었다. 그 책은 다리가 아파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의 정수리만 바라볼 뿐인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그걸 본 남자아이를 시작으로 길을 가던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누워 사람들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볼 수 있게끔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또 꺼내놓길 바라셨기 때문에, 책을 다 읽어 주시고 우리에게 ‘여러분은 하늘을 얼마나 자주 바라보나요?’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순간 자습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가방을 챙겨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운동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은 그 날은 집에 갈 때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놓고 하늘을 보면서 집에 갔다. 이제까지 몰랐는데, 별이 굉장히 많았고, 달이 둥글고 환하게 떠있었다. 친구들과 예쁘다, 예쁘다 감탄을 하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금요일 야자시간엔 드럼 연주를 배우거나, 합창 연습을 하거나, 연극을 보러 갔다. 보통의 학교에선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구경하는 수업보단 참여하는 수업이 대다수였고, 나는 그의 연장으로 동아리를 창설했다. ‘문학을 제압하는 아이들 - 문.제.아’에서 차장을 맡아 부원들과 시인 초청 강연회도 가고, 소설을 읽고 토론도 해보고, 팀블로그를 만들어 직접 한 모의고사 해설도 올리고, 전지에 시험 범위에 있는 소설과 시들을 구조화해놓고 '문학지도'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담당 선생님의 피드백과 팁들을 밑거름으로 부장과 차장인 나, 부원들이 주체적으로 동아리를 이끌어 나갔다. 다른 학교에선 공부하고 있었을 토요일 자습시간에 나와 친구들은 교실에서 펜을 잡기보다 직접 문학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우리를 신뢰하고 힘껏 밀어주던 학교와 선생님들 덕에 가능한 활동이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지금, 1학년 2학기 전공 수업인 ‘국어교과교육론’에서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가?’에 대해 배우고 있다. 학생들의 흥미와 열정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게 좋은 수업이라면, 나는 분명히 고등학교 3년 간 ‘좋은 수업’을 받았다.
[사진 설명]
*왼쪽: 대학 와서도 지겹게 붙어 다니는 고등학교 단짝과 대학교 근처에서 놀았을 때...로 기억합니다. ^^;;
*가운데: 한참 벚꽃 필 시즌에 여의나루 한강공원에 동기들이랑 다 같이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돗자리 깔고 놀다가 자전거 타고 다녔었는데 사람이 어어어어어엄청 많았어요.
*오른쪽: 올해 5월쯤 과에서 학술답사를 갔는데,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인 '녹우당'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학술답사 간 것도 좋았고 배경이 너무 이뻤습니다.
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영일고 선생님들께 연봉이 몇 억씩 하는 인강 강사들의 ‘백점 맞는 요약 노트’나 ‘적중률 99.9% 예상문제’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수업시간엔 정말 끝없이 발표하고 토론하고 질문했다. 대학에서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라는 강의를 수강 중인데,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가기 전에 교수님께서 수강생 전체가 돌아가면서 ‘자신이 가장 몰두했던 일’을 주제로 하는 3분 발표를 과제로 주셨다. 고등학교 때 했던 대로 익숙하게 그 전날 발표 대본을 짜고, 익숙하게 발표를 했다. 같은 과 동기들은 발표 날 아침부터 긴장되어 심장이 떨린다고 울상이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A4 한 장 반 분량의 발표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고 했다. 대학에 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소위 ‘강남 8학군’이라고 불리는 명문고를 나온 동기 언니부터, 전교생이 300명에 겨우 다다르는 시골학교를 나온 친구들까지. 그들에게 학창 시절 중에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그림책을 읽었다든가, 토론만 주야장천 했다든가, 미술시간도 아닌데 그림을 그렸다거나,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나에게는 그리고 영일고를 졸업한 친구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그들은 새롭다고 했다. “그렇게 수업하면 성적은 언제 올려?”라는 질문을 하는 친구들에게, 수업시간에 배운 ‘요령’들로 공부해 3월에 3등급이었던 국어 성적을 9월에 1등급으로 올렸다든가, 1학년 때 28점 맞던 수학을 3학년 때 96점까지 올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수능이 반년도 남지 않았을 때, 영어 수업시간에 연계 교재를 분석하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4명씩 조를 짜고 한 사람당 한 문제씩 맡아서 내용과 문법 등을 분석해 조원들에게 발표를 해야 했는데, 모든 조가 공통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목한 어려운 지문이 있었다. 한국어 해석본을 봐도 내용이 모호해서 선생님께서 반 전체에게 당신의 해석을 얘기해 주셨는데, 지문의 두 핵심 개념이 선생님의 해석과는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20분 간 끙끙대며 잡고 있던 결과, 내 나름대로의 일리 있는 해석이 나왔다. 그를 조원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걸 들은 선생님께서 오셔서 본인에게도 설명해달라 하시는 까닭에 ‘내 해석’을 설명했다. 혹시 틀렸다며 자존심 상해하실까 한 내 걱정이 무안해질 만큼, 선생님께선 자신이 틀렸다며 완벽한 설명이라며 종이에 요약해 놓은 해석본을 가져가셨다. 덕분에 다른 반에 까지 종이를 돌렸고 모두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의 틀림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존경스러우며 멋있는 것인지 미래의 교사 꿈나무로서 느꼈다.
[사진 설명]
*왼쪽: 이건 고1 땐데 도서관에서 국어 수업했을 때에요!! 당연히 쉬는 시간이죠. 배경이 도서관인 게 너무 반가워서 넣었어요~ ㅎㅎㅎ
*가운데: 고2 때 토요일 자습 날 쉬는 시간에 사진 찍고 놀고 있었는데, 저희 담임이셨던 광록 선생님이 깜짝 등장하신ㅋㅋㅋㅋㅋ. 민하랑 영윤이랑 영서랑 너무 풋풋하고.. 광록 선생님도 젊으시고..
*오른쪽: 고등학교 졸업식 전에 3학년 4반 친구들이랑 경주 펜션으로 놀러 갔을 때예요!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그 경계에서(..?) 너무 재밌게 놀았기도 했고 단체사진이 이쁜 것 같아요.. 하하.
중3 때까지 내 장래희망 리스트에선 ‘교사’의 ‘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까지의 경험에 의한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지금 스무 살의 나는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국어교사’를 목표로 한다. 고등학교 때 만난 많은 선생님들께선 당연스럽게 나의 삶에 관여하셨고, 난 그로 인한 나의 긍정적인 변화가 좋았다. 나 역시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의 삶에 관여하고, 그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국어’라는 학문을 사랑하게 된 것 역시, 고등학교 3년 내내 가르침을 받았던 국어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크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적을 크게 올렸고, 수능을 잘 봤지만 원했던 대학에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시험이나 대학이 나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3년 내내 선생님들께 귀에 닳도록 들었고, 그를 실감한 까닭이다. 또한 내가 어느 곳에서든 나의 잠재력을 무한히 펼칠 수 있단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그전까지는 모든 활동에서 존재감 없이 묻혀가길 바라던 내가 지금은 모든 활동에서 조장이나 대표를 맡으려 하고, 맡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변화’에 관한 가장 큰 입증 중 하나이며 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이유이다. 글을 마치면서, 겨우 한 장의 글 안에 다 담지 못할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읽을 많은 친구들 역시 한 장의 글 안에 다 담지 못할 많은 이야기를 경험하길 바라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글, 임은지(35회. 2016년 졸업)
영일고등학교 1학년 8반, 2학년 3반, 3학년 4반이었던 20살 임은지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며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시험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ㅎㅎ
<졸업이 싫었어> 프로젝트는 영일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고, 더 넓고 따뜻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