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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물고기 Nov 04. 2017

우물을 나온 개구리

영일고에서 내가 배운 것 #16

글, 김정훈(36회. 2017년 졸업)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영일고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자율전공학부에 재학 중인 17학번 김정훈입니다 :)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감회가 새롭네요. 작년에는 선배들이 쓰신 글을 봤는데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니,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제가 고1 때 학교에서 강연을 들으러 간 일이 있는데, 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의 고등학교 3년을 수학으로 말해 볼 수 있나요? 여러분은 2014년부터 고등학교에 다녔죠? 그럼 다음과 같이 되겠네요.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지낼 고등학교 3년은 여러분이 살아갈 어떤 3년보다 진하고 무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뜻이에요.”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지만 대학에 다니는 지금에야 비로소 약간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아요. 조금 과장을 섞자면 ‘20살의 김정훈’을 만든 건 이전의 십 수년이 아닌 고등학교 3년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지금부터 제 대학 생활에 녹아있는 영일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경북대 호수, 일청담에서.


AAT, 입학의 길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정시파였어요. 내신이 6점대를 찍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선택이었죠. 9월 평균 등급이 잘 나오면서 꽤 가능성이 보였어요. 그런데 수능에서 크게 미끄러져서 결국 원하던 점수를 받을 수 없었죠. 그럼에도 경북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AAT였어요. 저는 수시로 논술 6장을 썼어요. 아는 친구들은 알 테지만 논술은 대학마다 유형이 달라요. AAT라고 예외는 없었고, 당시에 다니던 논술학원에서는 AAT 수업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AAT에 합격한 건 박민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수업 덕분이었죠. 선생님이 매번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인쇄해주셨고, 모의논술도 알아보시고 저희가 응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답을 알려주시기보다는 답을 찾는 과정을 알려주시며 저희가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고요. 다른 대학 논술에 비해 쉽기는 하지만 입학 전형인 만큼 만만히 봐서는 안 되었는데 그 경각심을 항상 일깨워주기도 하셨어요. 시험장에 들어가기 직전 긴장되는 마음도 선생님의 응원 덕에 풀 수 있었죠.


옥상에서 문문의 '비행운'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


끝, 그리고 새로운 출발


저는 대학에 온 직후에 모든 의욕이 없어졌었어요. 타향에서 혼자 산다는 외로움이나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 등 여러 이유 때문이었죠. 남들 다 나가는 술자리나 밥 약속도 잘 나가질 않았어요. 굉장히 우울한 시기였는데, 그때 고등학교 선배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어요. 특히 영서 누나가 제 과 선배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외롭게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누나가 제 우울한 얘기나 고민도 다 들어주고 위로도 해준 덕에 밖에 나오게 되었거든요. 선배들이랑 밥 약속도 만들어줘서 말도 트게 됐고, 덕분에 동기들과도 꽤 친해질 수 있었어요. 덕분에 첫 엠티를 신나게 즐길 수 있었죠 :) 제 대학생활이 풍부해진 데에는 영서 누나 덕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네요.


영일고 출신 경북대생이 갖는 가장 큰 이점은 동창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당장 같은 학번에만 스무 명이 넘는 친구들이 진학한 데다, 위로는 선배들도 많이 계시니까요. 대구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도 동창이 많은 경북대에 자주 놀러 오는 덕에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친구들을 만나고 있어요. 만나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 보면 솔직히 놀랄 때가 많아요. 고등학교 때와는 생각하는 깊이가 달라진 게 느껴지거든요.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만의 삶의 태도를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부끄러워져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방황했던 시기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 영서 누나와 함께.


대학생은 어떻게 공부를 하지?


이 제목은 사실 제가 대학에 들어온 순간부터 하던 고민이에요. 수능 공부는 문제를 풀면서 실력도 점검하고 개념도 확실히 다질 수 있는 반면에 대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거든요. 강의들이 이어지지도 않고, 반년마다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결국 우왕좌왕하는 새 첫 시험이 끝났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해서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고삼 때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때도 공부를 해보려니 막상 방법을 몰라 헤맸었죠. 그래서 그때 알아낸 공부법을 그대로 써보기로 했어요. 우선 개념을 외울 때는 친구에게 설명을 하는 연기를 했어요.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공부법 꽤나 재미있어요. 이렇게 개념은 대부분 수월하게 외울 수 있었고, 응용문제를 만들어서 혼자 풀어보기도 했어요. 흔히 대학에 오면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사람이 없어 게을러지기 쉽다고들 해요. 저도 십분 공감하지만 다행히 제 고등학교 생활은 대학생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더라고요. 그때도 저한테 공부하라고 부담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자기주도 학습이 뭔지 대학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된 셈이죠.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방임으로 변질되지 않았던 영일고의 학습 분위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강의를 들을 때에는 영일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하브루타식 수업이 큰 도움이 됐어요. 대학교 강의는 토론이 굉장히 많아요. 강의 자체가 토론식이 아니더라도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거나 저희가 질문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것도 제 고등학교 시절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덕분에 질문도 많이 하고 발표도 많이 하면서 교수님들께 칭찬도 많이 들었고, 수업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죠. 글을 쓰다 생각난 건데, 다닐 때는 몰랐지만 영일고등학교 교육은 상당히 훌륭한 것 같아요.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음에도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를 했고, 교과목을 넘어선 다른 능력까지 길러줬네요.


반엠티(MT) 갔을 때 심심해서 물병을 쌓고 있는 모습.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대학에 오고 나서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물론 아직 많이 어리고 미숙하지만 2017년 초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하면 조금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만들어서 지금껏 가지고 있는 신조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예요. 흔한 격언이죠? 저는 생각보다 굉장히 모자란 사람이에요. 능력도 부족하고, 생각도 깊지 않죠. 그 탓에 실패를 항상 달고 살았어요. 인간관계든 학업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일이 드물었어요. 그래도 실패를 할 때면 저 말을 떠올리며 실패의 원인을 계속해서 곱씹었어요. 원인을 알아내야 다시는 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처음에는 아무리 원인을 고쳐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유로 실패를 하니까 의욕이 나지 않았어요. 제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죠. 하지만 실패를 했을 때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에 그걸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꾸역꾸역 고쳐나갔죠. 어떤 이유로 실패를 했든 두 번은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실패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실패를 하게 되면 제 모자란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걸 고치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학에 온 지금도 꾸준히 실패를 하고 있어요. 작은 일도 있었고 정말 큰일도 있었지만 꾸준히 고쳐나가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실패를 하는 것은 뼈아픈 고통이지만, 그걸 고쳐야만 다음번에 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 테니까요.


농활 갔을 때.


마치며


이상으로 제 대학 얘기를 마칠게요! 생각보다 우중충한 이야기들이라 실망했다면 미안해요. 글도 아마 썩 매끄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진솔하게 아무것도 섞거나 빼지 않고 오롯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러분이 너무 부러워요. 제가 고등학생 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네요. 여러분이 대학에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제가 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요. 저는 여기서 줄일게요. 다들 행복하세요 안녕~~~



글, 김정훈(36회. 2017년 졸업)

힘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 중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꾸고, 후회하며 살되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졸업이 싫었어> 프로젝트는 영일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고, 더 넓고 따뜻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기록입니다.
박민물고기 소속 직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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