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선생의 넷플릭스 보기
올해 고등학교 3학년부장이었던 박 선생은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했던 생각 중 하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어땠지?”이다. 그러면서 ‘그땐 좀 순수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이랑 많이 다른가?’라든가, ‘그때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라는가 하는 물음들을 떠올리다가 결국에 몰두하게 되는 장면은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얘들아, 우리 변하지 말자.”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박 선생은 스스로를 순수하다고 여겼나 보다. 그 순수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었겠지만, 그 후의 삶에서 이 질문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 때문이다.
안 변하는 것이 진짜 좋은 것 맞나?
나만 안 변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그건 그렇고, 과연 변하지 않을 수 있나?
한 동안 박 선생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 ‘변해도 좋을 것’과 ‘안 변하는 게 좋겠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중 하나가 아마 첫사랑이 아닐까 한다.
* * *
‘건축학 개론’은 오래전에 박 선생이 이미 본 영화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추천해 줬다. 결말이 뭐였더라? 고민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잠깐이마나 본다고 누른 것이 그만 정주행을 하고 말았다.
박 선생은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건축=사랑’이라는 발상의 참신함에 강한 인상을 받고 이에 몰입했었다. 이런 메타포를 발견한 자신이 대견해서 혼자서 마구 흥분했었다. ‘역시 나는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탁월해’라고 생각하면서 우쭐댔었다.
“(잘난 체하며) 영화에서는 건축학 수업 장면이 몇 번 반복되고 그 수업에서 주는 과제가 영화 중후반까지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계기가 되거든? (만족감에 들떠서) 그런데, 생각해 봐. ‘건축학’ 과제로 나간 그 내용들이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할 일들’이란 말이지. (마치 엄청난 발견을 한 듯)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제목은 '사랑학 개론'이야.”
이런 식으로 당시의 여자 친구와 대화했다. 좀 재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꽤 일반적인 관점이지만, 8년 전에는 ‘건축’을 ‘사람’과 관련시키는, 그러니까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건축을 비롯한 다른 모든 분야에도 결국엔 ‘사람’이 사용하거나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므로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진보이고 새로움이라고 당시에도 박 선생은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우쭐댈 수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그만의 착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영화를 볼 때 중심에 놓아야 했던 ‘첫사랑’을 놓쳤었나 보다.
‘건축학 개론’을 다시 보는 박 선생은 ‘승민과 서연이 다시 잘 됐으면 좋겠다’라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아주 간절히. 승민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되면 좋겠다는 바람, 서연의 상처도 승민과의 만남으로 치유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버무려진 동작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결말이 어쩌면 더 크고 많은 새로운 상처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는 중에는 보지 못한 것이다. 그 정도로 박 선생은 영화에 매우 빠져서 인물들에게 동화되었다. 눈물이 송골송골 맺힌 박 선생은 이제야 '건축학 개론'을 제대로 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세월은 이미 많이 흘렀고, 승민과 서연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 너무 멀리 가 있었나 보다.
박 선생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드는 생각들..
승민은 변한 것일까? 과거의 승민과 지금의 승민은 다른가?
서연은 변한 것일까? 과거의 서연과 지금의 서연은 다른가?
승민과 서연은 왜 다시 연결될 수 없을까?
박 선생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넷플릭스에서 보여주는 ‘건축학 개론’ 섬네일에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있던 오래된 것을 완전히 허물지 않고, 새로운 요구와 필요에 의해 보완한 집, 말이다.
새로 증축된 집은 변한 것인가, 안 변한 것인가? 안 변하는 게 맞나? - 이 질문에는 비교적 쉽게 답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넷플릭스의 섬네일, 참 절묘하다.
* * *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 변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거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라고 박 선생은 생각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갈까? 따위의.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아마 어떻게 살겠다는 마음일 거야, 눈에 보이지 않지,라고 박 선생은 생각했다. 난 네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나에게 너는 이런 의미야. 따위의.
이 둘을 조화롭게 잘하는 것이 아마 잘 사는 것이라고, ‘건축학 개론’을 오랜만에 다시 본 박 선생은 생각하고 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살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그리 되는 것들일 것이다. ‘건축학 개론’ 속의 인물들도 과거에 이별을 한 뒤로 세상을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를 테면 ‘기억의 습작’과 같은 노래로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현장으로 날아가더라도, 그동안 변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괴로워질 것이다. ‘변화는 변화 나름대로 인정하고 과거의 순수는 또 그것대로 무너뜨리지 말아야겠어. 너와 나의 평화를 위해.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균형을 위해.’ 하고 박 선생은 생각했다.
박 선생은 졸업식에 제자들에게 할 인사말로 이 얘기를 하려고 잠깐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아이들이 모를 것 같아서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한창 첫사랑을 겪고 있을 나이의 아이들에게 이런 꼰대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 얼른 정신 차리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