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길 찾기
지금의 학생들은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아마 3월 개학일에 선생님으로부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꽤 많은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공부하기 싫다'라는 마음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잔소리 비슷한 말, 뻔한 말일 경우라면 100%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공부'란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이런 고민으로 도서관에서 공부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게 되었다. 표지와는 다르게 내용이 뻔하지 않고 다채로우며 어렵지 않고 약간의 유머도 있다. 그래서 중고생부터 대학원에 가서 평생 공부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까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앞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섬세한 언어'에 관한 내용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도,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거칠게 일반화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삶이 단순하지는 않다. 거친 안목과 언어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를 부수거나 난도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식의 거친 공부라면, 편견을 강화해줄 뿐, 편견을 교정해주지는 않는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언어라는 쇄빙선을 잘 운용할 수 있다면, 물리적인 의미의 세계는 불변하더라도 자신이 체험하는 우주는 확장할 수 있다."
평생 책과 친하게 지내다가 눈을 감고 싶은 나에게도 필요한 공부법이다. 올해 3월에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조금 쉽게 바꿔 봤다. 밑밥을 조금 뿌린 후에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
"얘들아, 오늘 첫 시간이라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관해 내 생각을 말해 줄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돈을 오랫동안 벌 수 있다. 어렵게 번 돈을 불릴 수 있다. 번 돈을 잘 쓸 수 있다. 어때 괜찮지? 그리고 하나만 더. '섬세한 언어를 갖게 해준다.' 무슨 말이냐고?
공부를 아예 안 하거나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만 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삶은 단순하지 않아. 그래서 학교가 생겼고 학교에 오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지. 그 경험에 어울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공부야. 교실 안이든 밖이든 자기가 경험한 것을 언어로 정리해서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지. 이 복잡한 세계를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듣고 읽은 내용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말하고 쓰기 위한 내용을 섬세하게 다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 평생 남아있을 섬세한 언어를 갖는 것, 그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공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