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를 보면 엄마도 보고 싶고 엄마의 꿈도 생각나네.
"엄마가 가난하지, 니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 하고,
우리 엄마 내게 눈에 힘주고 말한 적 없지만, 자는 나를 깨워 괴기를구워 준 적 없지만, 한 번도 자식새끼 굶지 않도록 남의 자식들 반찬 해주고 찌개 끓이며 30년을 사셨네.
우리 엄마 부산에서 제일 좋은 여고 나오고 회사 생활도 했지만, 할아버지 사업 망해 서울로 올라와 펜 잡던 손으로 생선 다듬고 시집 읽던 손으로 뚝배기를 날랐네.
대학을 9학기 다니고 대학원을 5학기 다니도록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던 그 말을, 내가 임용시험에 합격한 다음 날 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서비스 반찬과 떡을 돌이며 하얀 순두부처럼 웃으며 말했다지.
"나도 여고 때까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아들이 돌고 돌아 선생님이 됐네요"
교무실에 앉아 아이들에게 나눠줄 학습지를 세다가 새끼손가락을 조금 베었을 때 짜증을 내는 대신 울엄마를 떠올리며 웃어야겠네.
베이고 데인 상처가 자글자글했던 엄마의 열 손가락이 내 손에 펜과 시집을 들려주었다고, 드라마처럼 엄마에게 푸지게 말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