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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Dec 30. 2020

<위대한 쇼맨>

Will never be enough.


퍼포먼스로 압도하는 미약한 서사. 뮤지컬 영화의 이면.

2017년 개봉작이지만, 때에 맞춰 보지 않고 2020년 재개봉할 때 보게 되었다. 원체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 데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극명하게 호불호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보기에 꺼려졌었던 게 우선적인 이유였다. 서커스와 쇼라는 소재 자체는 매력적이나 그것만으로 관객을 끌어당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그런 영화라고 느꼈는데, 막상 보고 난 뒤에는 충분히 그런 것들로도 관객을 끌어당길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메가박스 MX관(실제 소리를 표방하는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하는 특별관)에서 영화를 봤고, 특별관에서 보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각이 잡힌 군무, 가슴까지 울리는 베이스 사운드와 매혹적인 OST의 향연, 개성이 도드라지는 인물들과 미약하지만 나름 극적으로 연출하려고 노력한 서사까지 만 원짜리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십만 원짜리 공연을 봤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눈이 즐거운 영화였다. 아니, 다시 수정해서 눈만 즐거운 영화였다.




<위대한 쇼맨>은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어두운 백그라운드에서 조명으로 영화의 서막을 알린다. 뮤지컬 영화의 정체성을 알리듯 익숙한 OST가 관객을 반긴다. 관객은 마치 서커스에 입장하듯 영화 속으로 빠져든다. 여기저기 터지는 불꽃과 폭죽, 단원들의 칼 같은 군무, 불 뿜는 코끼리와 뛰쳐나오는 사자들, 공중곡예와 기이한 사람들까지 ... 영화 밖 관객들은 영화 속 관객과 동일화되어 쇼를 즐긴다. 객석에 앉아있는 듯 영화를 즐기다 보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영화가 흘러간다. <위대한 쇼맨>의 가장 기본적인 매력은 이러한 퍼포먼스성 연출에 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연출과 그래픽도 포함되는데, 이 연출을 돋보이게 잘 살려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눈을 뺏는 화려한 연출이 일순간이라면 실망하겠지만, 영화는 1시간 46분 동안 쉴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퀄리티가 한층 높아질 수 있었던 중요한 메인 포인트다.




다만, 스토리는 꽤나 부실한 편이다. 한 사람의 전기가 그렇듯 '어디까지나 뻔하겠지'생각하면서도 내심 뭔가 변화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냥 일반적인 인물 영화 클리셰 범벅이었다. 성공 뒤에 실패, 실패 뒤에 극복, 재기를 통한 깨달음 ... 이러한 클리셰 범벅이 문제가 되는 건 지금이 2020년이라는 점이다. 과거 영화들이 시도했던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동시에, 영화가 가진 작품성 자체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토리가 비약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서사구조가 불분명하고, 동시에 짧은 시간 안에 갈등과 해결 또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 속 스토리의 기본적 장치들이 대부분 스킵되어있다. 뮤지컬 장르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촘촘히 구성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다른 뮤지컬 영화들처럼 적어도 관객이 납득 가능한 장치를 사용했어야만 스토리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싶다면 스토리를 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평에 공감한다. 




조연배우들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왜 개연성이나 부연설명은 개나 줘버렸을까. 특히, 매력적인 두 인물 필립 칼라일(잭 애프론 분)과 앤 휠러(젠다이아 분)의 비중이 너무 적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인물은 배경을 딛고 사랑하는 관계로 나오게 되는데, 어느 부분부터 둘의 관계에 대한 서사가 심하게 많이 생략되었다. 이걸 갈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치한 사랑싸움으로 마무리되어서 크게 상심했다. 두 인물 모두 배경에 대한 뚜렷한 설명이 없다는 것과 갈등의 원인은 있는데 이에 대한 해소는 없는 것이 다소 어색한 연출의 주원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위대한 쇼맨> 자체가 주인공 바넘(휴 잭맨 분)의 전기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니까 조연 인물들의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할 순 있지만, 주인공만으로는 영화가 부족하니까 다른 조연 인물들의 서사를 애매하게 끼워 넣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좋아하는 배우이다 보니 개인적인 욕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둘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조연들의 세계관이 너무 좁고 빈약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무마할 정도로 사운드가 환상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OST를 빼놓고는 이 영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his is me'가 주제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OST 라인업 자체가 워낙 환상적인데, OST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카메라 구도나 조명 등 다른 미장센과 연출 방법들도 그만큼 잘 따라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강조될 부분은 강렬한 사운드를, 정적인 장면에선 인물 한 명을 제외한 슬로 모션을 사용하는 등 장면과 OST의 타이밍의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알게 모를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오페라부터, 일렉트릭 팝, 락까지 고증을 지키기보다 현대 사운드에 맞춰 음악을 세련되게 각색한 것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특히, 오페라 창법을 이용한 발라드 'Never Enough'는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분) 역을 맡은 배우분의 립싱크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감정적이다. OST 부분에서, 뮤지컬 영화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 끌어올린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강하게 남아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장면 모두가 하나로 흘러가듯이 기억난다기보다 시간 순서에 관계없이 뒤죽박죽 어떤 장면들만 머릿속에 맞아떨어지듯 남아있다. 그중 인상 깊게 남는 장면이라면 발 'This is me' 행진 씬이겠다. 믿음에 등 돌린 채, 묵묵히 노래로써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비참하면서 동시에 웅장하다. 자신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모습을 꺼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관객도 함께 호응할 수밖에 없어진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당당히 혐오하는 사람들 앞에서 군무와 함께 음악으로 응답하는 장면이 <위대한 쇼맨>의 결정적인 주제로 드러난다. 이처럼 현대 사회를 대변하듯, 사회에서 버려진 일부의 약자 계층들이 혐오 앞에서 당당하게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획을 남겼지 않을까 싶다.




본질로 들어가서 영화에서 가장 많이 비난을 받는 부분은 무엇인가. 바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스토리와 주인공이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점이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P.T바넘은 흥행의 천재, 엔터테이너 사업의 선구자임과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 동물학대범이었고. 영화에서 보여줬던 공연 자체가 알고 보면 프릭쇼(Freak show: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생긴 기형적인 외모의 사람들을 모아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쇼)였다는 사실도 굉장히 충격적이다. 실존 인물 자체 또한 극악하게 기록이 갈리는 편이니, 영화 자체에도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북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는 영화다'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각색이라는 이름하에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정당화될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로 제공해야 했기 때문에 연출하기에 자극적이거나 민감한 부분들이 생략되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영화적 연출을 위해 인간적인 서사가 필수적이었고, 사실에만 집중해서는 결코 영화 <위대한 쇼맨>으로 탄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포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했다고 평가할지, 아니면 영화는 단순히 영화로만 판단하고 각색의 일부로 받아들일지는 보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서로가 어떤 입장에서 영화를 봤든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는 꼭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느 정도 확실하다. 바로, 꿈이다. <위대한 쇼맨>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할 것이며,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는 주인공인 바넘을 제외하고 다른 인물에게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혐오와 비난을 받던 단원들은 '이게 내 모습이야' 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무시받고 멸시당할지언정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이겨 싸워 내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앞서 말했던 바넘의 꿈과 교차지점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때론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꿈 앞에서 주저하고 버벅거린다. 타인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 자신감을 잃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를 주저한다. <위대한 쇼맨>은 당신의 소극적인 생각을 뻔한 스토리로 뒤집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비로써 나라고 느끼고 당당해져야, 그리고 기회를 좇아 잡아내야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영화 중반부부터 끊임없이 강조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이뤄내라'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 한 사람의 전기라기보다 그의 일생을 부분 차용해서 따와 만든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봐야만 개인적인 명작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부가적인 정보를 찾아본 대부분은 실망하고 상처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쇼맨>의 흥행은 영화 산업에서 연출의 힘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를 증명하는 영화이다. 미약하고 부족한 서사에 흠집이 워낙 많지만 동시에, 불편하지만 혐오와 자기 비난으로 둘러싸인 세상에 따갑게 충고한다. 영화 내용 자체가 그랬고, 영화의 탄생 배경 자체가 사회에 던져주는 화두가 꽤나 뜨겁다.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무작위로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는 영화이지만 영화가 주는 감정보다 오락성 짙은 스크린 속에 깊이 빠져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우선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사진 출처 : <The Greatest Showman>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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