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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an 05. 2021

" 2021 "

올해 나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2021.


대학교를 벗어나 직장인이 되었고, 고향을 떠나 홀로 도시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한 달 채 지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다. 나는 여전히 영상을 만들고, 이제 이름 앞에 PD라는 직책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직장의 이름이 붙어있는 명함이 생겼고 호칭도 피디님으로 바뀌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호칭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2020년은 내 인생 최고의 과도기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 10대 시절에 느꼈던 것, 20대 초반에 느끼던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과도기였다. 기존에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려서 밀려오는 변화가 버거워 며칠씩은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종일 누워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나서 무언갈 해야 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늘 뭔갈 하기에 바빴다. 변화에 대처하는 게 두려웠지만, 동시에 변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불안했을 터였다.


2020년에 닥친 거대한 변화 앞에서 나는 주위에서 불리는 '어른'같은 사람이 되었다. 남는 건 시간밖에 없으면서도 늘 분주하게 무언갈 하기 바쁜 사람, 어느 그룹에서 중심축이 되는 형 같은 사람, 미래를 위해 뭔갈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나에 대한 설명이 이런 것들로 채워져 가는 걸 보면서, 철들어야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사실은, 뒤쳐질까 봐 내심 두려웠을 것이다. 두렵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을 만큼 말이다.


우물쭈물 2021년이 되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0이 되었다. 가족품을 떠났고, 이제 명절이 다가오면 치열하게 기차표 싸움을 해야 하는 삶이 돼버렸다. 쓸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자유롭다고만 말하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태워 경기도 자락에 내려주시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더니 하룻밤을 지내고 난 뒤 그대로 떠나셨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분명한 건 많은 돈을 쓰셨다는 것과 새 자취방에 놓을 매트리스를 고르느라 잠 한숨 편히 주무시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무뚝뚝하신 경상도 아버지답게 태연하게 차에 타시곤 그대로 휭 가버리셨다. 오래된 트라제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한참 동안이나 사라진 후에도 나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발길을 돌린 채로 주말 내내 울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냥 한참을 울고, 울었다.


한 달 즈음 지난 지금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 많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다. 내가 너무 급하게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온 건 아닐까 덜컥 외로움이 밀려올 때도 여전히 많이 있다. 동시에 지나온 관계에 후회를 덧대고 있지만 이전처럼 미련하게 되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언젠가 때가 되면 괜찮아지겠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가끔 그립다는 감정이 몰려오면 그게 누가 됐든 그 사람 생각에 며칠씩 골머리를 앓곤 한다. 때문에 나는 용기를 잃었고, 동시에 담담해졌으며 어느덧 무딘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처를 주고받고, 험담을 하고, 비웃고 기만하고 혐오하고 여전히 그런 것들이 너무 넘쳐나는 세상이라 가끔은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관계라는 게 일차원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그런 것들이 줄어들까. 사람이 언제나 내 뜻대로 마음이 다 향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여전히 그런 것들에 마음이 아픈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냥 걔네들을 내 마음에 던져둔 거야, 걔가 뒤에서 내 욕을 했든 앞에서 나랑 싸움을 했든 그냥 내 마음에 걔네들을 던져 놓은 건데 어떻게 미워하고 하겠어. 그냥 시간이 지나면 본인들이 깨달아주길 바랄 뿐이지.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굳이 그냥 이야기하지 마. 나쁜 소식은 서로 전하지 말자. 적어도 나랑 잘 지낼 때에는 참 착한 애들이었고, 참 정 많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어"


말한 것처럼, 상처를 주든 싫어하든 미워하든 그랬던 모든 사람들을 싫어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피곤해졌으니까. 그저 그런 사람들도 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행복하고, 잘 지내고, 건강하고 그냥 무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혹시, 나를 싫어한 이유가 뭔가 뚜렷한 사람이라면 그냥 미안하다고, 뭐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네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그것만큼은 네 마음이니까 미안하다고 이야기 정도는 해주고 싶다. 적어도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덧붙여, 진정으로 증오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뭐가 됐든 간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얼굴 보고 인사할 때 적어도 부끄럽지는 말자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괜찮다면 뻔뻔하게 인사해도 좋으니 말이다.


시간이 나면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향을 떠나오면서, 거리 자체가 멀어진 탓에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게 주 이유고, 코로나라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재난이 나를 수동적으로 바꿔버린 탓도 있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전에는 멋을 부린다고, 제 나름에는 그게 고독한 멋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포장했지만 어쩌면 그게 잘못 살아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했다. 외로움은 멋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다분히 부정적인 감정에 가깝다는 걸 말이다.


도시에 혼자 사는 삶은 끊임없는 그리움의 연속이다. 고향이나 친구, 기존에 살았던 삶이나 대학생의 신분 같은 것. 그리움에 그리움을 덧대다가, 결국 물꼬가 트이면 주체할 수 없어지곤 한다. 올해는 연말이 조용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언제쯤이면 이 그리움에 적응할 수 있을까. 적응하게 된다면 그런 것들이 무뎌지는 걸까, 꽤나 슬플 것 같지만 지금의 나보다는 괜찮을 것만 같다.


잘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2021년은 진짜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야겠다. 더 이상 상처 받지도 않고, 버거워하지도 않고, 내가 바라던 안정과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겠다.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각오를 적어놓고 했는데, 올해는 그냥 무탈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것마저도 과하다고 느껴서 그냥 거창한 것 없이 좀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해야 정도로 협의했다. 너무 큰 바람도, 너무 작은 소망도 없는 그런 2021년을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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