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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Nov 05. 2020

" 다정한 당신 "

가끔 떠오르는.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다정한 당신.


가끔 다정했던 당신이 떠오른다. 너무 다정해서 내 전부를 줘도 괜찮을 것 같았던 사람. 


가을 언저리라 그런지 종종 당신을 떠올렸다. 먹먹한 공기에 쓸쓸함을 견딜 수 없어서, 그래서 당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잘 지내는지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물을 수도 없이 아스라이 멀어진 당신을 아주 가끔 그리워한다. 조용히 당신을 떠올려 그리워하고 있다 보면, 문득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덜컥 들기도 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저 마음 흐르는 대로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뿐이라는 것도 말이다. 


새벽녘에 조용히 맥주 한 잔 하고 있다 보면 그리운 사람들이 가득 넘쳐흐른다. 맥주와 함께 밀어 넣어도 크게 터진 그리움이 온 바닥을 적시곤 한다. 쏟아진 그리움 마음속에 담으려 꾸역꾸역 애쓰지만, 때마다 당신이 다정한 모습으로 나의 숨을 턱 하고 막는다. 내 전부를 줘도 괜찮을 것 같았던 사람,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았을 것 같았던 당신. 그리움에 비례한 당신의 모습은 나의 새벽을 뒤흔들고도 남아 나의 잠까지 어지럽히곤 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잔상은 모두 당신이 나를 사랑이라고 부르던 때였다. 일상 속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가끔 나를 그리움에 빠지게 하는 당신, 나는 새벽이 되어 그 순간에 머무르고 후회하고를 반복한다. 공교롭게도 당신이 참 좋아하던 맥주와 함께 보내고 있는 이 순간도 나는 후회를 그치지 못한다.


당신이 내 마음을 들락날락거릴 때 나는 먹먹해져 오는 목 끝으로 당신 이름을 내뱉는다. 유난히 날이 춥더니 이럴 줄 알았다고 자책해봐도 별 소용이 없다. 그리움의 문턱에 다정하게 나를 잡아끄는 당신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안부조차 모르는 당신의 다정만이 떠오르는 것은 당신에게서 느껴지던 온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온기가 그리워 새벽녘에 보일러를 뜨겁게 틀어도 다정한 당신이 되어주진 못한다. 더운 공기만이 방안에 적막하게 흐를 뿐, 마음의 반절조차 달래주지 못한다. 어떻게 사는지 안부라도 물을 수 있다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나는 비겁하게도 가끔 삶이 너무 버겁다는 이유로 당신을 찾는다. 도망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는 어김없이 당신이 떠오른다. 조용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나의 삶을 위로해주던 당신 말이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숨기 고선 너무 애쓰지 말라고 나를 토닥이던 그 밤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의 삶은 여전히 끊임없는 슬픔의 연속이고, 어른이 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어른에 가까워지지조차 못했다. 가만히 손을 포개 주곤 모든 것이 괜찮다던 당신과의 밤으로 다시 한번만 돌아간다면, 당분간은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까.


그저 가만히 당신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제법 단단하게 무장했던 나의 삶이 당신에게는 꼭 그렇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새벽녘에 언제 깼냐는 듯 익살스럽게 나의 잠을 깨우던 때에는 진짜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고, 그런 당신의 다정이 정말 나를 죽여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신이 그려준 그림 정말 좋아했는데, 전에 쓰던 핸드폰이 고장 나 버려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당신이 그린 그림을 참 좋아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것들이었고, 받아본 적 없는 선물을 받았었다. 부드러운 선과 따듯한 색채로 세상을 만드는 당신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때론 그런 당신을 동경했고, 그런 당신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했다.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당신의 다정을 참 사랑했다고, 그래서 내 삶이 조금 더 괜찮아졌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멀쩡히 일상을 지내다가도 당신이 그리워 맥주 한 잔을 사서 퇴근한다고,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당신의 소리 없는 안부에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 없었다고, 상처로 만들어진 관계들에서 그리워질 사람이 당신밖에 없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나를 문득문득 떠올렸던 때처럼, 내가 당신을 문득문득 떠올리는 지금에서야 못한 말을 마저 붙인다. 유난히 차가 마시고 싶어서, 안부를 곁들어 전하고 싶다.


날이 앞으로 더 쌀쌀해진다는데 감기 조심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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