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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Sep 27. 2020

" 나는 취준생 "

끔찍하고도 외로운 존재.

위로가 되지 않는 삶.


" 스스로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힘들다는 말로도 표현이 어려울 만큼 지쳐서 내뱉었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갈피를 잃었고, 좋아했던 일이 무엇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렸다. 면접을 보러 가던 기차에서 기세 등등하던 나와는 다르게 돌아오는 기차에선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혹여 우는 게 들킬까 봐,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할까 봐 구석에 몸을 쭈그리 고선 숨도 쉬지 않고 울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만 이렇게 비참하고 버거운가 싶어서,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 돌아오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나에게 '인생 최고의 암흑기'라는 단어가 나한테 가장 어울렸을 듯하다.


그저 힘들다는 것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나는 그 근원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힘들다는 이유에 복합적인 근원 말이다. 대학생으로 살아온 6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았고 대외활동, 봉사활동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열정의 값으로 페이도 받아보고, 때론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새벽 밤을 지새워 울고 작업하고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스스로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부딪혀서 배워보려 애쓰기도 했다. 때론 궂은 비난을 들어가며 어이없는 실패를 겪어가면서 말이다.


무언갈 하려 하기 전에 앞서 내가 무슨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는 그저 여유로운 사람의 이야기로 들렸다. 내가 무슨 사람인지 알 필요가 무슨 상관이람, 당장 내가 벌어야 할 돈과 먹고살아야 할 현실이 앞에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꽤나 아등바등 살았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성적도 놓칠 수 없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때론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얹혀살기도 했고, 경험이라고 하기엔 비참한 상황 앞에서도 태연해보려고 늘 애썼다.


그런데 문득 내게 주어진 현실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하려니까, 그러니까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면접을 보는데 막상 내가 원한 삶과는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열정적인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면접을 보는데 기계적인 대답을 뱉고 집으로 돌아오니 비참한 현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연봉 조건에, 내가 아니어도 굳이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끔찍한 현실 말이다. 그제야 나는 깨닫고 말았다. 내가 무슨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의 중요성을.


돌아오는 기차는 4시간이나 걸리는 무궁화호였다. 한 푼이 아까운 취준생에게 KTX는 사치일 뿐이었다. 얼마나 처량한 신세인지 ... 내 스스로 비관에 빠지고 말았다. 허무함과 공허함이 온몸을 감싸 돌았다. 역 내 플랫폼에서 무능한 사람은, 사회에 그저 한 부속품 같은 사람은 나뿐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열차가 진입하며 바람이 내 온몸을 감싸는 순간 주저앉아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울분을 토하고 그냥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울고 있으면 누구든지 일으켜 주지 않을까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뭐랄까, 지나치도록 쌀쌀했다. 그저 가을이 오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구태여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처량한 내 신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한솔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 편인가요? "


면접관의 질문이 문득 나의 귀를 맴돌았다.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질문이 왜 떠올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니, 준비한 대답이 있었지만 아마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또 기억나지 않는 헛소리를 했겠지.


주위 지인들의 위로를 받았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게 온몸으로 티가 났나 보다 생각했다. 위로의 말들은 대부분 뻔하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지인들에게 뻔한 위로를 잘하지 않으려 하지만, 생각보다 뻔하게 느껴진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게 못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인데, 못되게 굴수록 나 스스로를 더욱 깎아먹는 줄 알면서도 계속 그랬다. 


이런 위로의 말들이 정말 내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마음을 쓰는 일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이런저런 말들은 결국 책임 없는 허상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 성공 경험 같은 게 있으세요? "


나는 생각보다 꿈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꽤나 열정적이고 즐거운 사람이었는데 그런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처음 카메라를 들고 열정만으로 현장에 나가 이곳저곳을 누비던 나는 어디에 있지.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결국에 나인데 수없는 '나'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는다. 계획을 짜고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결과물 앞에서 울고 웃고 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누군지도 모를 클라이언트들 앞에서 수없는 컨펌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다. 이제 퇴근 없는 영원한 삶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나 있을까, 두려움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어디든 도망가고 싶고, 돌아오지 않을 영원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대로 모든 흔적을 지우고 어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죽은 듯이 산다면 그것도 괜찮은 삶이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삶보다 어중간하게 살아온 삶이 포기하기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


내일 아침엔 일어나서 또 자소서를 써야 할 것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탈락 문자에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버텨내야 할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기업의 면접을 보게 될 것이고, 대놓고 부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인사담당자의 말 앞에서 무기력하게 웃음을 지어야 할 것이다. 주말이 없는 삶이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저 '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날들이 돌아올 것이다. 


하나도 괜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부모님께 불편한 웃음을 지어야 할 것이고, 지인들에게 괜스레 센 척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피해야 하고, 혹여 불편한 상황으로 다툴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도 중요한 건 '괜찮다'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전에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고, 추후에도 그렇게 괜찮은 사람으로 남아야만 한다. 강박 같은 책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꿈꾸던 삶과 날이 갈수록 거리가 생긴다. 나는 억만장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드높은 명성을 얻어 누구나 내 이름을 아는 무한히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이 이미 너무 오랜 전에 포기한 것들이고 태초부터 바라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그저 조금 행복하고, 원하는 밥을 챙겨 먹고,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소박한 삶을 원한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높은 연봉을 받으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내 삶을 내 삶대로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조차 딱히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고 싶은 그저 그렇게 행복한 삶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아플 것이고 또 슬플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


환경이나 사회를 탓하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을 탓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는 아나키스트로 살아갔을 것이다. 사회라는 정해진 룰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내가 사회를 탓하는 건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굴레일 뿐이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불행한 현실에 덧대어서 그저 화풀이를 하고 싶어 진다.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 같냐고, 왜 나만 이렇냐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진 말을 뱉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냐고. 나는 못돼 처먹어서 그런 말들로 똑같이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애초부터 힘들다고 이야기하려 하지도 않았으면서 알아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누군갈 고통스럽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건 아니었는데, 입을 떼려고 해도 가혹한 현실이 자꾸 나를 짓누른다. 울음을 멈추고 싶어서 분노하는 나를 모두 떠났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아줬으면 한다. 


나는 취준생이다. 대학생과 사회인이라는 애매모호한 경계에 서서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는 끔찍하고도 외로운 존재.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이상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 그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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