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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n 06. 2020

" 최근 짧은 생각들[2] "

그때 그때 했던 생각들. [2]

短文


1. 밤이 되면, 삶은 스스로에게 끈임없이 질문한다. 오늘은 괜찮았는지, 열심히 살았는지, 실수하지 않았는지, 너무 감정적이진 않았는지, 행복했는지, 슬펐는지, 그리운지, 잊었는지 …온갖 질문들을 내던지고 자취를 감춘다. 무수한 질문 속에 떠내려가다 못해 파묻혀버린 나는 질문 하나에 답을 내리지도 못한 채 전해 추락하고 만다. 애석하게도, 매번 같은 질문에 속수무책 당한다는 것이 억울하다.


2. 가끔 당신 생각이 난다. 내가 수없이 부르는 당신 중 가장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당신'.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당신인데 무슨 면목으로 그리워하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적막조차 사라지고 지나치게 외로운 순간에 당신을 떠올렸다. 조용한 울음소리 뒤로 내 등을 쓸어주던 당신을 말이다. 온전히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신과 함께 지냈던 그 밤 만큼은 무엇보다 선명하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버거울 때마다 그 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만 있다면 삶이 조금 괜찮아질까.


3.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었어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그런 사람, 우연하게 만나고 우연하게 친해져서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사람.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대단한 감동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그 순간만큼은 저에게 동경이자 열병이었어요. 애석하게도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있었지만 준비한 만큼 나아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2년이었지만 그건 단순히 시간 개념 같은게 아니었어요. 늦게나마 떠올리면 밉다가도 보고싶고 그립고 간절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저한테는.


4. 오래 된 친구와 관계를 끝내고 나서 더 이상 슬프지도 후련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성격이 맞지 않아서, 생각이 달라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다투던 날들도 안녕이구나' 정도가 전부였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 중 가장 큰 변화는 관계에 더 이상 연연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지는 게 그리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몇 년 전만 해도 멀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워서 온갖 위선을 떨었는데 도리어 지금이 한 결 편한 기분이다. 가끔 삶이 외롭게 느껴지지만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시간을 쏟아붓고 감정을 게워내던 날 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5. 때문에 요즘은 SNS와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예전엔 피드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인스타그램을 했는데 최근에는 딱히 사용하지 않는다. 내 삶이 소중하다거나, SNS는 허물 뿐이야 같은 멋진 핑계가 아니라 그냥 모든 게 질리고 지루해졌다.  아주 솔직히,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의 삶을 보는게 배가 아프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은밀하게 남의 삶을 관음하는 게 신물이 난 셈이다. 정작 내가 실재하는 공간 속에 몇 평 조차 되지 않는 답답한 공간이 그냥 한심해 보였다.


6. 최근에 영화를 보고 문득 글이 그리워져 리뷰 몇 편을 남겼더니 구독자가 갑자기 올랐다. 생애 처음으로 리뷰 작성 제의를 받기도 하고 시사회 초대도 받고 얼떨떨하기만 하다. 문득, 재미있게 느껴져 최근에는 영화도 몇 편씩 몰아서 보고있다. 예전에 적어둔 메모까지 뒤져가며 말이다. 내가 쓰는 사족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아쉽게도 시사회는 불참중.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지방에서 일을 하진 않았을텐데 ... 회사 측에 이야기를 해도 서울/경기권까지는 자제를 요청한다. 시사회를 참석하지 못하는 건 아쉽고도 분하다.


7. 어릴 시절 썼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보다가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무슨 일을 하고있어? 그게 제일 궁금해. 생각지도 못한 일 하고 있으면 재밌겠다. 일하는 건 어때? 어른이 되면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들대. 그치만 나는 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해.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해야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난 내가 어쩔 수 없이 사는 건 바라지 않아. 일을 하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쩔 수 없이 사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너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8. 요즘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때, 일부러 맛있는 술을 찾는다. 호가든 로제, 제주 슬라이스 등 쓰지 않고 달짝지근하게 입에 남는 술들을 찾아 마신다. 맥주가 당기지 않으면 저렴한 위스키에 토닉워터를 때려 부어 하이볼을 마시곤 한다. 술은 써야 맛있는 거라던데 나는 영 입맛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내 방 안이 휴식공간이 아닌게 되어버려서 그런 게 아닐까 어쩐지 슬픈 생각이 든다. 


9. 삶은 살아간다는 건,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의무를 지고 사는 것과 같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는 끈임없이 상처받고 산다. 원치 않는 일을 하고, 버거워 하며, 악착같이 하루를 견딘다. 살고 있기에 끈임없이 버거워야 한다니, 아이러니 하다. 때론, 철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싶지 않아 태어났는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아이들의 말에 뼈가 아픈 건 우리도 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아서가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버거운 의무 같은 거다. 정말. 


10. 악재는 늘 한번에 찾아온다. 근데 악재라는 게 정말 비겁해서 살만해졌다고 생각하면 쉴새없이 몰아친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경계를 풀면 미친듯이 쏟아진다. 행복부터 자존감까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슬프게도 주위메 말한다는 게 참 어렵다. 예전에 어디서 봤던 게 부정적이고 슬픈 사람 옆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는 쉽게 전염되기 쉽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문득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벽녘에 조금, 아주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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