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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20. 2020

" 떠난다는 것 "

여행에 관한 단문.

종종.


가끔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 관광, 삶 어느것이 되었든 내가 머무르는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겠죠. 분명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마냥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나서 굳이 뭘 하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별 생각없이 며칠씩 지내고 싶다는 생각 뿐입니다.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다분히 욕심의 마음이겠거니 싶어서 조용히 방 안에서 사진 몇 장을 뒤져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합니다. 근데, 정말 그것으로 괜찮은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네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도, 돈도 아닌 마음이라고 했던가요, 이전에는 공감가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부터 시작된진 모르겠지만, 뭐든 떠난다는 게 참 무서워져 버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두렵다기 보다, 돌아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게 아닐까요. 떠난다는 것은 돌아오고 난 뒤의 환경과 변화하는 삶까지 함께 동반하기 때문이겠죠. 저 또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아왔을 때의 내 자리와 삶은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죠. 오로지 스스로의 책임이고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겠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리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의구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떠난 순간만을 그리워하게 될까 그 삶이 너무나도 걱정스럽습니다.


이전에는 떠나고 싶으면 부쩍 자주 떠났습니다. 바다가 보고싶으면 드라이브를 떠나고, 조용히 지내고 싶으면 타지에 정착해 며칠을 숨죽여 살고, 여건상 떠나지 못한다면 스네스로 그런 기분이 들게끔 이것저것 해보곤 했습니다. 가끔은 신기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수 있다는 기회는 물론 마음조차 사그러드니까요.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붙잡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이거다!' 하고 확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립다는 생각만 불어나고 몸은 움직이지가 않습니다. 스스로도 한심하다 느끼지만 가끔은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이제서야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저의 탓이 아닐까요.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사회가 이런건줄 알았다면 크지 않았을거야' 같은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농담처럼 뱉었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보니 그토록 슬픈 말이 없었습니다. 등떠밀려 도착한 곳이 낭떠러지 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꽤나 운이 좋은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말아버릴 정도니까 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딱 그 정도의 삶이 저를 흔드는 것은 왜일까요. 괜찮게 하루를 보냈다는 건 틀리멊는데 말이죠.


물론, 진심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 느낍니다. 몇 년 만이긴 합니다. 병원에 가는 횟수도 줄었고, 나름 안정된 삶에는 변함이 업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해먹고, 누군가와 연락을 나누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하는 일상이 얼마만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왜 떠나고 싶은 걸까요. 늦은 새벽에 스르로에게 끈임없이 질문에도 답을 주지 않습니다.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떠나간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도 여전하고, 지나간 짧은 시간에 대한 후회와 저를 웃게 하는 행복한 기억들을 추억하기도 합니다. 방안에서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그저 미련일테지만, 새로운 어딘가에서 이런 것들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로 사진첩에 몇 년 전 사진들을 몇 번이나 뒤적거립니다. 적어도 배경사진은 한 다르니까 말이죠.


떠나고 싶습니다. 이 짧은 문자 안에 담긴 무수한 책임과 감정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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