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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25. 2020

" 늦은 밤에 "

늦은 단상.

가끔 그런 밤.


오늘은 밤이 꽤 깊다. 춥다, 길다, 어둡다 같은 말들이 깊다는 표현 안에 메꾸어질만큼 오늘 밤은 유난히도 깊다. 베란다를 열면 찬 바람이 솔찬히도 불어온다. 온기 가득한 방 안에서 잠에 들지 못한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유난히 따듯한 바닥이 나를 바닥 밑으로 끌어당기는 듯 하다. 눈꺼풀이 텁텁해져 몇 번이나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뜬다. 감는 순간에 몇 번씩 네가 떠오른다. 떠오르는 너를 내려놓지 못하고 긴 밤을 헤메인다. 네가 없는데 새벽녘에 몇 번이나 나를 부른다. 조곤히 내 이름을 부르다가 웃음소리와 함께 터져버린다. 네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니까, 밤이 온다. 새벽이 온다.


어디에서 온 너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네 생각에 몇 번 잠기었다가 헤엄치듯 너를 벗어난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걸까 어려운 마음이라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네가 보고싶은걸까. 내 정처없는 그리움은 어디로 향해서 어디서 끝나는걸까. 전에는 괜찮았는데 요즘은 그게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없어져버린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네가 내게 남기고 간 것들이 얼마 있지도 않은데 무엇이 너를 부르게 하는걸까. 질문에 끈임없는 답을 하려 하지만 도통 어떤 말도 떠오르질 않는다.


네가 떠나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하루만' 하고 빌었던 적이 있다. 나는 너만큼이나 차갑지 못해서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까 조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지금에서야 온기만 남아있는 이 마음지만, 가끔 네 생각으로 불을 지핀다. 그럼 다시 달아오르고 다시 빌고 끈임없는 과정의 반복으로 들어간다. 스스로도 한심하다고 느끼지만 정처없는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할지 정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병처럼 그립다는 말만 몇 번씩 되뇌인다. '하루만' 하고 비는 이유가 무엇일까. 차가웠던 너처럼 내 마음도 사그라들길 바랬던 걸까. 아니면 나는 아직도 몇 안되는 그 짧은 시간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걸까.


분명,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다만 변치 않는 건 무엇인가. 나조차도 변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간 앞에서 도대체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말이다. 답만 없을 뿐인데 온 방 안이 서늘해지는 이 공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문득 그리워지는 네가 이 방 안 어디에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좇는 것인가. 


나는 또 맥주를 꺼낸다. 마시고 쓰고를 반복한다. 목넘김 몇번에 흐르듯이 네가 스쳐지나간다. 맥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지인가 표상인가. '네가 참 좋아했을텐데'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이제는 청자조차 존재하지 않을 이 말을 왜 간직하고 있는가. 적당한 핑계거리를 둘러대려다가 맥주 몇 모금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가끔 아득히도 네가 보이는 듯 하다. 저 언저리에서 너를 닯은 무언가가 나를 보는 듯하다. 그 웃음소리와 그 환한 표정으로 나를 망치려 든다. '떠오름'에 너는 그 자리를 지킬 뿐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 싶어 몇 번의 과거를 떠올린다. 지금의 나라면 괜찮을 수 있을텐데 하고 한심하게 확신한다. 고달프던 너의 삶에 그늘 정도는 되어줄 수 있을텐데 지금은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그저 안타깝다는 마음일 뿐이다. 아니 사실은 아쉽다는 마음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네 상처를 고백할만큼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나는 너의 그런 삶을 듣고도 왜 안아주지 못했나, 그때의 나는 왜 더 여유롭지 못했지. 멍청한 생각으로 밤을 지새울것만 같다. 이런 생각으로 다시끔 나를 작게 만드는 네가 가끔은 원망스럽다.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사랑이었을까.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이였을까. 담배 몇 대와 몇 잔의 술과 몇 번의 잠자리가 전부였던 우리가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네 손이 참 좋았다. 네 손을 잡고 걸어본 거리가 좋았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손짓하는 네가 참 좋았다. 처음 가보는 거리라도 모든 게 익숙했고, 아무것도 아닌 공간에도 네 손에 덕분에 온 세상의 나의 전부 같았다. 네 손을 놓쳤던 그 날, 뭔가 잘못됬건만 같았는데 그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제와 보니 네 웃음소리도, 발자국도, 온기도, 풍경도 모두 내 세상의 전부였는데.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되기까지, 애가 타서 떨어지지 않던 전화기가 바닥에 내팽겨지기까지, 한밤중의 졸린 목소리와 차가운 대답까지, 늦은 밤 추위에 떨다가 홀로 쓸쓸해지는 시간까지. 모든 것들이 선명하다가도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내가 바라던 현실은 진짜가 되지 못했다나는 '운명' 이라는 단어에 눈이 멀어 진짜 우리를 놓친 걸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진짜를 놓쳐버린 내가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완전한 끝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밤이 자꾸 지나간다. 내일이면 잊혀질 감정이겠거니 하고 밤을 지새운다. 생각의 그을음이 내 감정을 태워버리겠거니 하고 믿는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잊혀져가는 네가, 언제쯤이면 모두 지워질까 하고 의문 가득한 마음으로 밤을 보낸다. 몇 번의 밤이었는지 헤아릴수도 없는, 몇번의 네가 언제 찾아올까 두려움이 앞선다. 언제쯤 괜찮을 수 있을까. 결말의 끈을 쥔 게 네가 될지, 내가 될지 알 수 없는 밤에 오늘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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