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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pr 24. 2020

<봄날은 간다>

라면 먹을래요?


누군가에게 상우, 은수였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영애와 유지태, 허진호 감독의 완벽한 트라이앵글. 2000년대 한국 영화 특유의 로맨스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읊조리는 사랑의 상처와 치유. <봄날은 간다> 속에는 뚜렷한 메시지가 들어있지도 특별한 전개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워낙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보이는 구성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스토리지만 쉬이 영화를 끌 수 없다. 조용한 음악, 올드한 필름, 편안한 구도까지 ... 연출의 박자가 모두 한 큐에 맞아떨어진다. 허진호 감독의 노련한 연출기법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20대 시절의 유지태와 이영애의 모습이 뭐랄까 영상으로만 담아내기에는 아쉬운 정도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로맨스를 담아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지쳐 헤어짐을 고한다. 비록 은수(이영애 분)가 이혼을 한 번 겪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은수가 상우(유지태 분)에게 이별을 고해야 할 만큼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냥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뿐이었다. 사랑의 시작에서 끝까지 지극히 현실적으로만 담아냈기에 <봄날은 간다>가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으며 감정에 따라 주인공을 안쓰러워하거나 혹은 똑같이 아파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였다. 특출난 연출기법 없이 관객 대부분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연애의 보편적인 공식처럼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 있으나, 분위기마다 전환되며 어우러지는 OST와 편안한 색감과 배경 덕분에 영화의 볼거리가 생각보다 풍부하다. 무엇보다 빈티지한 필름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인기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계절마다의 색깔이 잘 보이고 2000년대 특유의 소품과 분위기가 잘 드러나기 때문에 그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같이 느껴질 수 있겠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영화 자체가 '첫사랑'을 보는 것만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 두 배우의 젊은 시절 풋풋한 케미를 보는 것도 영화의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유지태 배우 특유의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그대로 닮은 상우, 튀진 않지만 발랄한 은수를 닮은 이영애 배우까지. 두 배우 모두 캐릭터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이별은 주인공 둘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질렸다는 이유로 상우에게 이별을 고하는 은수가 마냥 야속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둘의 경험과 속도가 달랐을 뿐이다. 이혼의 경험을 가진 은수는 연애로 남고 싶었을 뿐이고, 상우는 느린 속도로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다. 김치는 못 담그지만 라면만큼은 잘 끓일 수 있었던 은수가 그런 상우를 부담스러워했던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분명 사랑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다만 사랑에 관한 경험과 속도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 앓다 죽을 만큼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상우도 은수도 그런 차이였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다름에서 시작된 둘의 랑이 결국 다르기 때문에 끝났다는 사실이다.  


스토리를 따라가며 상우에게 몰입할지, 은수에게 몰입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전에는 상우를 보며 마냥 지고지순한 게 그저 마음 아프고 안쓰러웠는데 다시 꺼내보니 은수의 마음이 영 이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상우를 사랑하지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태도가 부담스럽거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은 상우뿐만 아니라 은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제든 이별을 대처할 수 있는, 언제든 봄날이 끝날 것을 알고 있는 은수가 오히려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설정 상 이혼이라는 배경이 은수에게 존재하는 것도 관객에게 납득의 여지를 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사랑은 변한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그랬듯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지만, 때론 모든 것을 망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쉽게 무너지고 가라앉는다. 변해버린 둘은 서로의 길을 간다. 자신의 감정을 이겨낼 수 없는 상우는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고, 울고, 화를 내고, 미행하고, 서성이고, 차를 긁고 ... 결국 할머니에게로 돌아가 그 작은 어깨에 기대어 '떠나는 여자와 버스는 잡는 게 아니다' 같은 위안을 받는다. 그에 비해 은수는 다른 남자에게로 돌아간다. 더 이상 상우의 옆자리가 아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직접 운전해 여행을 떠난다. 서로의 이별을 마무리짓는 태도조차도 확연히 다르다. 세련된 소형차를 가진 은수와 투박한 중형차를 가진 상우처럼 말이다.


봄날은 갔다. 아주 멀리 떠나 돌아오지 못할 만큼 둘의 봄은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다시금 재회한다. 카페에서 '잘 지내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창가 너머로 거리에는 벚꽃이 가득하지만 상우에게 은수는 더 이상 '봄날'이 아니다. '같이 있을까'라는 가벼운 말투와 표정에 상우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상우는 시간을 통해 '봄날'을 이미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과정이 고통스럽고 오래 걸렸을지언정 은수와 자신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예의를 갖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은수가 건넨 화분을 말없이 돌려주며 사랑했던 기억과 '봄날'에 대한 아름다움과 침묵을 표한다. 추억이라는 이름 하에 가려질법한 미련과 슬픔으로 복받치는 감정에도 이겨내고, 편안하고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듯이 말이다.


몇 번의 사랑을 하고 몇 번의 이별이 계속 이어진다. 아픔에 못 견뎌 감정을 태우고 회복하고를 반복한다. 우리네 삶 속 사랑은 이런 과정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서로의 봄날임을 확인하고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한 사람을 마냥 기다리고 익숙해지고 편해지면 심리적으로 멀어지고 지질하게 울며 지난날을 추억하고 간직하는 것들. 알고 있음에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 속 상우처럼 삶은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음에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봄날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돌아오리라 하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 : 봄날은 간다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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