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01

회전목마 인심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정신을 차려보니,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계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이대로 넋을 놓았다가는 어느새 첫눈이라도 흩날릴 판이었다. 어물쩡 주말 출근으로 또 한 계절을 흘려보낼 뻔했던 참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계절의 죄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가는 이 짧고 찬란한 시간을, 나는 또 놓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대구 이월드로 향했다.


내 기억 속 그곳은 여전히 '우방랜드'라는 이름으로 더 정겹다. 군 시절, 한 후임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곳 이야기를 늘어놓은 덕에, 나는 가보지도 않은 그곳을 마치 고향처럼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후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도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2.


오랜만에 찾은 놀이공원의 물가는 낯설었다. 어른 자유이용권 4만 원, 어린이 3만 원. 순간 계산기를 두드려 본 나는, 마음 편히 즐기기엔 제법 묵직한 숫자에 잠시 망설였다.


그나마 서른여섯 달이 채 안 된 둘째는 무료라니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깍두기' 같은 혜택은, 알고 보니 또 다른 이름의 '문제'였다. 무료라는 것은 '입장'뿐, 놀이기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교묘한 셈법에 꼼짝없이 낚인 셈이었다.


둘째가 타고 싶어 하는 놀이기구 앞에서, 나는 매번 저 아래 매표소까지 뛰어가 한 장당 5천 원짜리 표를 사 와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깍두기'구나. 어디에도 온전히 끼지 못하는 존재. 무료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매 순간 자신의 자격을 돈으로 증명해야 하는 어정쩡한 자리. 우리는 그것을 '혜택'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둘째는 몇 개의 놀이기구 앞에서 무섭다며 내 품을 파고들었고, 우리는 아이를 안은 채 다섯 살 첫째만을 놀이기구에 태우며 여유롭게 걸었다. 품에 안긴 둘째의 체온이 따뜻했다. 이 아이도 곧 자라 혼자 놀이기구를 타겠다고 조를 것이다. 그때는 또 3만 원의 무게를 감당해야겠지.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의 지갑은 가벼워지고, 삶은 계속된다.


3.


그러다 우리는 놀이공원의 심장, 그 국룰과도 같은 '회전목마' 앞에 섰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녀석은 무료였다. 지난번 롯데월드에서도 그랬던 것을 보면, 아마도 '회전목마 무료'는 이 나라의 보이지 않는 법률인 듯했다.


이것은 놀이공원에 남은 마지막 낭만일까. 나는 이 순간만큼은, 회전목마가 정말 의리 있는 '협객(俠客)'처럼 느껴졌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키가 크든 작든, 모두에게 평등하게 꿈꿀 자격을 내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우리는 그 덕에 회전목마를 두 번이나 탔다. 쉴 새 없이 돌고 도는 목마 위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5천 원짜리 화려한 놀이기구 위에서보다, 어쩌면 공짜이기에 더 순수하게,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값이 매겨져 있지 않았다.


4.


망상하기를 즐기는 나는, 추운 겨울날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와, 온종일 이 회전목마만 태워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억지스러운 신파극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누군가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삶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회전목마 같은 '인심' 혹은 '선심'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고급 백화점 맨 위층, 붉은 대리석으로 빛나는 화장실. 지갑의 두께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곳에서 잠시 왕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이의 존엄을 지켜주는 무언의 배려.


육지에서 떨어진 섬마을의 뱃삯. 군인이든, 외지인이든, 그저 섬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뱃삯을 받지 않던 그 무심함은, 사실 '우리는 한 공동체'라는 따뜻한 연대의 증표였다.


이제는 사라진 '담배 인심'. "불 있으세요?" 한마디로 시작되던 낯선 이와의 짧은 대화. 건강에는 해로웠을지언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얕은 담을 허물던 그 시절의 소통.


회전목마의 인심을 생각하니, 잊고 있던 온기들이 자꾸만 샘솟는다.


5.


그러다 다시 생각은 '깍두기'로 돌아갔다.


우리네 문화에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아이를 "너는 깍두기야!" 하며 슬그머니 놀이에 끼워주던 그 따뜻함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깍두기는 유료가 되었다. 효율과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왜 저 아이만 공짜여야 해?" 라는 질문이 정당해졌다.


물론 맞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신데렐라의 성처럼 귀하고 아름답다.


회전목마는 돈다. 천천히, 둥글게, 아름답게. 마치 시간처럼, 계절처럼, 우리 인생처럼. 그렇게 돌면서 잠시나마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해준다. 무료로.


값을 매기지 않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순수해진다.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쩌면 회전목마가 무료인 이유는, '꿈'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이 각박한 세상이 놓지 않고 있는 마지막 양심이자 최후의 낭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6.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창밖으로, 우리가 놓칠 뻔했던 가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 실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내의 손, 저녁노을, 그리고 회전목마.


아,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인심이 남아 있구나. 회전목마처럼, 천천히 돌아가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그런 따뜻함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세상은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