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22

누가 더 행복한가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연휴의 마지막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가야 할까. 마음속 지도 위로 몇몇 장소들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대구의 오랜 명소 이랜드는 분명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을 터였다. 여린 아이들이 그 소란 속에서 제 풀에 지쳐버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우리는 왕복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달성공원으로 향했다.

결혼 전, 세상 모든 것에 뻗대기만 하던 시절의 나였다면, 아마 어설픈 신념을 내세워 동물원 같은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동물원이란, 펼쳐진 풀밭과 살아있는 생명이 공존하는 최고의 세계가 아니던가.

7년 만에 다시 찾은 달성공원에는 어딘지 모를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었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조차 그 쓸쓸함을 다 가리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공원 앞 거리는 인사동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이렇듯 모든 풍경을 바꾸어놓는다.

2.

가을이었다. 기억 속에는 아직 작열하던 태양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낙엽들이 발치에 흩날리는 깊은 가을이었다.

동물원의 산책로는 잘 짜인 교향곡처럼 점진적인 상승과 고조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사슴으로 시작해 코요테를 지나고, 침팬지와 새들의 합주가 끝나면 마침내 호랑이와 코끼리, 그리고 대망의 사자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낯선 풍경을 발견했다. 우리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그곳의 모든 아이들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은 마치 유튜브 채널을 넘기듯 동물들을 대했다. '우와' 하는 감탄은 찰나에 그쳤고, 시선은 30초를 채 머물지 못한 채 다음 우리로 분주히 옮겨갔다.

어린 시절, 숨을 꼴깍 삼키며 경이로운 눈으로 동물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강이 흐르고 있는 걸까. 이 생경한 풍경 앞에서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고, 아이들은 무엇을 얻은 것일까.

3.

아이들과 걷다가 거대한 조류 사육장 앞에 멈춰 섰다.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새들이 거대한 그물 안에 있었다. 작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오리와 두루미, 백로와 고니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답답한지 어떤 녀석들은 일부러 서로의 깃을 스쳐 가며 신경질적인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을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답답할까. 저 좁은 하늘이, 저 정해진 세상이 어떻게 느껴질까.

아이들이 보채기 시작했다. 그만 다른 곳으로 가자고. 그제야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옆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나직이 말했다.

"저기, 밖에 새가 있네요."

정말이었다. 그물 밖에서 백로 한 마리가 홀연히 날아와, 새장 가장 높은 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자유로운 그 새는, 한참이나 그물 안의 세상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떠나 몇 걸음 걷다 뒤돌아볼 때에도, 새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박혀 쉬이 잊히지 않았다.

저 백로는 왜 저곳에 앉아 있는 걸까. 그물 안의 동족들이 반가워서일까. 아니면, 저 안온해 보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갇힌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자유를 확인하는 잔인한 관조일까. 문득, 제대하고도 부대 앞을 서성이는 예비역의 아쉬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무엇을 그리워했을까.

그때, 내 안에서 문득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어리석은 자야. 『장자』를 읽고도 물고기의 즐거움을 배우지 못했느냐. 네가 어찌 새의 마음을 안다 하느냐. 그 모든 것은 네 머릿속 번뇌일 뿐,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니라."

그렇구나.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야 했다.

오늘, 두 마리의 새를 바라보던 나는 과연 어디에 있던 새였을까.
그물 밖의 자유로운 백로였을까, 그물 안의 무수한 새들 중 하나였을까.

어쩌면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경계 위를 위태롭게 날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전 21화큐레이터의 끄적끄적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