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도는 ‘명품’이었을까, ‘필수품’이었을까?

by 낭만지리 굴비씨

조선후기, 한양의 서점가는 전에 없던 활기로 가득 찼습니다. 지식에대한 욕구가 폭발하던 시기였지요. 사람들은 더 이상 관청에서 내려오는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떠나려는 선비, 물건을 팔러 가는 상인, 과거를 보러 상경하는 유생들까지 모두가 정확하고 실용적인 ‘지도’를 원했습니다. 김정호는 바로 이 지점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최근학계의 연구 결과들은 김정호가 만든 지도들이 철저한 기획 아래 탄생한 ‘상업 출판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그의 대표작 『대동여지도』는 오늘날로 치면 소수의 VVIP를 위한 ‘최고급 주문 제작 명품’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가로 3미터, 세로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지도를 목판으로 찍어내고, 그것을 다시 책으로엮어내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었을까요? 정대영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고종 황제조차 이 지도를 ‘구입하여’ 규장각 신하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왕실 도서관에 납품될 정도였으니, 그 주된 고객은 나랏일을 고민하는고위 관료나 깊은 학문을 연구하는 지식인층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재미있는점은 이 지도가 ‘옵션’ 선택이 가능한 맞춤형 상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형은 흑백이지만, 돈을 더 지불하면 산맥과 물길에 아름다운 색을 입혀주었고, 심지어구매자가 원하는 세부 행정 구역명(방면)을 붓글씨로 빽빽하게추가해 주기도 했습니다. 김정호는 단순히 지도를 찍어내는 기술자가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 지식을 큐레이팅 할 줄 아는, 시대를앞서간 CEO였던 셈입니다.


3. 수험생을 위한족집게 지도와 조선판 라이프스타일 앱

그렇다면일반 서민들에게 지도는 그림의 떡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시장에는다양한 가격대와 기능을 가진 지도들이 넘쳐났습니다.

대표적인예가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입니다. 서울의 출판업자들이 만든 원본이 인기를 끌자, 전주(완산)의 출판업자들은이를 베껴 이른바 ‘해적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적판이 원조보다 더 기가 막힌 ‘신의 한 수’를둡니다. 지도 여백에 각 도별 과거시험 합격 인원수를 표로 만들어 넣은 것입니다.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는 지방 유생들에게 이 지도는 길잡이이자 합격 전략서가 되었습니다. 타겟 고객을 정확히 겨냥한 마케팅의 승리였죠.

또 하나, 『동판수진일용방』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소매(수) 속에 넣어(진) 다니는 책’이라는 이름처럼, 이 작은 책은 오늘날의 스마트폰 속‘라이프스타일 앱’과 같았습니다. 전국 지도는 기본이고, 편지쓰는 법, 제사 지내는 법, 급할 때 쓰는 응급 처치법까지온갖 생활 정보가 가득했습니다. 장사하러 떠나는 상인이나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가장들에게 없어서는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이처럼조선의 고지도는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서 땀에 젖고, 길 위에서 펼쳐지며 사람들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호흡하던 ‘상품’이었습니다.

4. 피나무에 새긴가난한 예술혼

하지만‘상업 출판’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지도 제작자들의 고단한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의 목판, 그자체입니다.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고계에서 잘 나가던 한사업가가 병을 얻어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최현길. 모든것을 내려놓은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고지도였습니다. 우연히 본 조선의 옛 지도에서 그는 형언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 지도를 소유하고 싶었으나, 원본은고사하고 규장각에서 펴낸 영인본(복사본) 지도책조차 살 돈이없었습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그 책은 병든 그에게 너무나 먼 사치였습니다.

그는농사를 지었습니다. 도시에서 펜만 잡던 손으로 괭이를 들고, 흙먼지를뒤집어쓰며 배추와 무를 길렀습니다. 작은 가게 귀퉁이에 앉아 푼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마침내 지도책을 샀을 때, 거친 손으로 책장을넘기며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남은생을 바쳐 이 위대한 지도들을 내 손으로 직접 베껴 그리겠노라고.

최현길선생이 붓끝으로 지도와 교감하며 만난 사람은 바로 150년 전의 김정호였습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일은 막대한 자금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지도는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 몰라도, 김정호 개인은 결코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가바로 목판의 재료인 ‘피나무’입니다. 당시 왕실이나 관청에서 쓰는 고급 목판은 단단하고 결이 고운 배나무나대추나무였습니다. 하지만 김정호는 무르고 흔한 피나무를 택했습니다. 돈이없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른 나무여야만 자신의 호흡대로 빠르고 힘차게 칼을 놀릴 수 있었기때문일 것입니다.

목판을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물겨운 흔적들이 보입니다. 나무를 아끼기 위해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까지 알뜰하게깎아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바다처럼 텅 빈 여백 부분에는 다른 지역의 지도를 곁방살이하듯 조그맣게새겨 넣었습니다. 얇디얇은 나무판, 그 위에 새겨진 거침없는칼자국. 그것은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했지만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지식인의 처절한 생존기이자,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세상에 전하고싶었던 뜨거운 예술혼의 결정체였습니다.

5. 실패한 종이 조각에서발견한 위로

국립전주박물관수장고 깊은 곳에는 아주 특별한 유물이 하나 잠들어 있습니다. 『대동여지도 산엽본(散葉本)』이라 불리는, 책으로엮이지 않은 낱장 지도들입니다.

처음이 지도를 마주했을 때, 저는 그저 완성된 책에서 떨어져 나온 낱장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인쇄 도중 실패해서 버려진 ‘파본(破本)’들이었습니다. 잉크가 번지고, 위치가어긋나고, 종이가 구겨진 실패작들. 요즘 말로 하면 인쇄소바닥에 굴러다니던 ‘쓰레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이상하게도, 그 완벽한 『대동여지도』 완성본보다 이 실패한 종이 쪼가리들이 제게는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정호는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지도를 만들고 나서도 오류가 발견되면 주저 없이 목판을 깎아내고 다시 새겼습니다. 수없이 찍어보고, 수없이 실패하고,수없이 고쳤을 것입니다. 전주박물관에 남은 그 꼬깃꼬깃한 파본들은 바로 그 실패의 증거이자, 포기를 모르는 집념의 산물입니다.

완벽한위인전 속의 김정호가 아니라, 실수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실패해서 종이를 구겨 던지며 한숨 쉬었을 인간김정호. 그 인간적인 냄새가 150년의 시간을 건너 제게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괜찮다. 나도 수없이 틀렸다. 중요한 건 틀리지 않는 게 아니라, 다시 고쳐나가는 마음이다.”

최현길선생이 농사지은 돈으로 샀던 그 지도책, 김정호가 피나무 껍질을 벗기며 새겨 넣은 그 산줄기, 그리고 인쇄소 바닥에 흩어졌던 실패한 종이들. 이 모든 이야기가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지도’가 완성됩니다.

지도는땅을 그리는 그림이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기는 것은 사람의 무늬입니다.우리가 고지도를 보며 가슴이 뛰는 이유는, 그 낡은 종이 위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밤, 여러분의 마음속 지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 혹시조금 비뚤어지거나 잉크가 번져 있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그 흔적이야말로 당신이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가장 아름다운 증거일 테니까요.

image02.png
image01.png
이전 01화1. <대동여지도>는 얼마에 팔렸나?